목숨만큼 소중한 복원력[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7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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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출항 하루 전이다. 1항사인 나는 하역을 멈춘다. 컬럼비아강을 따라 내륙에서 내려온 원목 더미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원목 수출자는 나의 눈치를 본다. 남은 것을 모두 실어가 주기를 바란다. 중국으로 싣고 가는 운임보다 내륙에 원위치시키는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부두와 연결되도록 우리 배를 잡아맨 밧줄을 약간 풀었다. 원목 더미를 하나 크레인에 걸고 배 옆의 물에 떨어뜨린다. 파동이 일어나고 배가 좌우로 움직인다. 나는 배의 좌우 움직임의 시간을 재어본다.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이 배의 움직임의 주기이다. 수식에 넣어서 복원력을 구한다. 50cm이다. 남은 원목을 실어도 될 것 같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출항 후 항해 중을 고려해야 한다. 알래스카주를 지나면 워낙 춥기 때문에 갑판 위 원목에 올라온 해수가 얼게 된다. 그 얼음으로 인하여 복원력이 더 작아진다. 마이너스 수치가 나온다. 나는 긴장한다. 그렇다면 남은 원목 다발을 실을 수 없다. 원목 수출자에게도 통지를 한다. 그는 나에게 찾아와 웬만하면 더 실어달라고 사정한다. 나는 단호하다. “사장님 부탁을 들어주면 항해 중 배가 전복되어 모두 죽는다”고 심각하게 말한다. 아쉬운 표정으로 그는 돌아갔다. 1998년 미국 북서부 항구 롱뷰에서 원목을 싣던 장면이다.

복원력이 없다면 배가 중립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배에 16m 깊이의 화물창이 있고 물 아래로 10m, 물 위로 6m가 있다. 이 경우 무게중심은 8m이다. 그런데 화물창의 위 허공에 6m 높이로 화물을 더 실을 수 있다. 무게중심은 3m가 더 올라가서 11m가 된다. 중심이 위로 올라가서 복원력이 나빠졌다. 무게의 중심이 바닥에 있어서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오뚝이를 생각해 보라. 원목선은 부피가 큰 화물을 실어서 선박의 허공에도 화물을 싣게 된다.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의 전복 사고도 복원력이 나빠서 발생했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시에도 선박의 상부에 무게를 가하고 아래에는 무게를 오히려 빼 버렸다. 복원력이 나빠졌고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청보호와 같은 통발 어선의 경우도 선박 위의 공간에 통발을 수천 개 싣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서 복원력이 약해진다.

복원력이 나쁜 배는 항해 중 파도를 옆으로 맞으면 안 된다. 횡파를 맞으면 제자리로 돌아올 힘이 부족해서 전복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선수 약간 옆인 1시 방향에서 맞도록 해야 한다. 복원력이 나쁜 배는 좌우 흔들림이 아주 느리다. 배를 처음 타는 선원들은 원목선이 너무 편하다고 하지만, 노련한 선원들은 걱정을 많이 한다. 배가 빨리 움직이면 복원력이 좋다는 의미이고 오히려 절대 전복되어 침몰하는 일은 없다.

선원과 선주는 모두 이 복원력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선박은 복원력을 모두 갖춘 상태로 출항해야 한다. 복원력이 없는 선박을 출항하게 했다면 운송인은 해상법이 허용한 혜택을 보지 못한다. 복원력의 중요성이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숙지되고 현장에서 지켜진다면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목숨#소중함#복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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