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미덕[이은화의 미술시간]〈237〉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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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오흐테르벌트 ‘우아한 타운하우스 복도의 보모와 아이’, 1663년.
야코프 오흐테르벌트 ‘우아한 타운하우스 복도의 보모와 아이’, 1663년.
영어 단어 ‘채리티(Charity)’는 자선이나 자선단체를 의미하지만, 관용의 뜻도 있다. 관용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예로부터 약자를 돕거나 자선을 베푸는 것이 중요한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야코프 오흐테르벌트가 그린 이 그림도 16세기 네덜란드 상류층 가족의 미덕을 담고 있다.

그림은 크고 우아한 집 현관 앞에서 보모 손을 잡은 부잣집 아이가 거지 가족에게 동전을 건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이는 옷차림 때문에 여아처럼 보이지만, 실은 남자아이다. 당시 관례상 7세 무렵까지는 남아들도 여아 옷을 입었다. 남루한 옷차림의 거지 소년은 한 발을 실내로 내디디며 동전을 받기 위해 손에 든 모자를 내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시선이다. 거지 소년의 시선은 잘 차려입은 부잣집 아이를 향하고, 젖먹이 아이를 안은 가난한 엄마는 그런 아들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다. 세상 어느 엄마가 자식이 구걸하는 걸 원할까마는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인다. 반면, 부잣집 아이는 화면 밖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저 지금 불쌍한 사람 돕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자선 행위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다. 뒤편 거실에서 이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봤을 아이의 부모도 정면을 응시하며 자녀를 잘 가르치고 있음을 표명하는 듯하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등장하는 개는 이 모든 장면의 증인 역할을 맡았다.

로테르담 출신의 오흐테르벌트는 평생 동안 상류층의 일상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단순한 외적 묘사가 아니라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서로 다른 계층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장면을 통해 도덕적 교훈을 주고자 했다.

오흐테르벌트는 비록 상류층 고객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동정심이 깊었다. 현관문을 활짝 열고 거지 가족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보모의 따뜻한 시선이 화가의 마음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상류층#미덕#채리티#야코프 오흐테르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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