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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워킹맘 발레리나’의 활약, 한국에선 왜 보기 어려울까[광화문에서/김정은]

입력 2022-08-15 03:00업데이트 2022-08-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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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화부 차장
“2007년에 에투알(수석무용수)로 임명돼 1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대. 2014년생 딸을 둔 마흔 살 워킹맘이기도 해. 대단하지 않아?”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파리오페라 발레 2022 에투알 갈라’ 공연에서 단연 눈에 띈 건 파리오페라발레단(BOP)의 에투알 도로테 질베르였다. 현대 발레 ‘아모베오’의 파드되(2인무) 공연을 펼친 그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듯 유려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춤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왜 그의 이름 앞에 ‘BOP의 자존심’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지 실력으로 납득시켰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건 그녀가 2014년생 딸을 둔 워킹맘이란 점이었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딸의 모습을 종종 공개해 온 그는 한국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엄마’ 정체성을 대중에게 드러내곤 했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국내 최정상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며 주목받았던 한국의 발레리나들이 떠올랐다. 그중 아이를 갖기 위해 발레단에서 은퇴한 경우도 있고, 은퇴 후 육아에 매진하는 무용수도 있다. 이들을 보면 마치 발레리나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은퇴의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미혼이지만 젊은 발레리나를 선호하는 대중의 시선을 고민하던 발레리나도 있었다.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인 김주원은 서른일곱이던 2014년 한 방송에 출연해 “한국 사회는 나이가 있는 발레리나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며 마흔을 앞둔 발레리나로서의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외국은 어떨까. 도로테 질베르 외에도 2015년 BOP와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각각 은퇴한 스타 발레리나 오렐리 뒤퐁과 줄리 켄트는 모두 마지막 무대에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한 것으로 유명한 ‘워킹맘 발레리나’였다. 특히 줄리 켄트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여러 작품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나 마이야 플리세츠카야는 볼쇼이 발레단에서 65세까지 무용수로 활동했다.

한국에선 왜 이런 광경을 보기 어려울까. 한 무용 평론가는 “발레는 무용수가 미세한 근육까지 관리해야 해 발레리나에게 출산은 은퇴 선고로 여겨진 부분이 있다”며 “특히 발레리나의 이미지 중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국내 관객의 기대치가 높다 보니 20대 발레리나 위주로 활약했다”고 분석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국내에서도 소수의 ‘워킹맘 발레리나’가 등장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가 2019년 딸을 출산하고 100일 만에 복귀한 것.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발레리나들은 결혼과 출산을 했던 사례가 거의 없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김리회의 복귀는 국립발레단 내 또 다른 워킹맘 무용수를 낳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솔리스트 한나래 역시 지난해 출산 후 발레단에 복귀했다.

은퇴의 잣대로 나이와 출산이 아닌 기량이 우선시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적어도 10년 뒤엔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 엄마는 무대에 서는 발레리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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