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의 배철수와 구창모[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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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블랙 테트라 ‘구름과 나’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1977년, 샌드페블즈가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는 모습을 군대 내무반에서 보고 있던 배철수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배철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한 대학생이 많았는지 이듬해 열린 2회 대회엔 더 많은 응모자가 몰렸고, 음악적인 평가 또한 1회 대회보다 높았다.

각각 1977년, 1978년 9월에 열린 대학가요제 1, 2회 대회 사이엔 해변가요제도 있었다. MBC에서 개최한 대학가요제의 흥행을 보고 TBC(동양방송)에서 다소 급조해 만든 행사였다. 대학가요제와 차별화를 위해 TBC는 개최지를 태안 연포해수욕장으로 결정했고, 대학생의 낭만과 7월의 여름을 연결 지었다.

제1회 해변가요제는 앞서 언급한 ‘급조’란 말이 무색할 만큼 전설로 남았다. 대상을 받은 징검다리의 ‘여름’을 비롯해 블랙테트라(열대어)의 ‘구름과 나’, 런웨이(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휘버스(열기들)의 ‘그대로 그렇게’ 같은 입상곡이 큰 인기를 얻었다. 왕영은(징검다리), 구창모(블랙테트라), 배철수(런웨이), 이치현(벗님들), 이명훈(휘버스), 김성호(블루 드래곤), 주병진 등 이후 스타가 되는 이들이 다 이 대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해변가요제를 더 유명하게 해주었다.

해변가요제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송골매를 탄생케 해준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배철수와 구창모는 각각 항공대와 홍익대, 다른 대학의 대표로 대회에 참여했다. 배철수는 구창모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잘생긴 얼굴로 저렇게 노래를 잘할 수 있지?’ 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감탄에서 그치지 않고 ‘꼭 같이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음악 대신 공부를 하겠다며 설악산 오색약수터 인근 암자에 머물던 구창모를 찾아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간 배철수가 밴드를 함께하자 제안했다. 대중이 알고 있는 송골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구창모라는 또 다른 날개를 얻은 송골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처음 본 순간’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배철수가 가진 토속적인 정서의 록 음악과 구창모의 팝적 감성이 조화를 이루었다.

배철수는 구창모가 가진 팝 센스를 좋아했고, 송골매를 가장 높이 날아오르게 한 것도 구창모의 노래였다. 44년 전 여름, 지금 들어도 젊음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구름과 나’를 들으며 함께 밴드를 하고 싶다고 꿈꾸었던 청년이 있었다. 그 노래 덕분에 우리는 송골매라는 멋진 밴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의 그 두 청년이 함께 나이를 먹어온 팬들 앞에서 다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젊은 구창모와 배철수의 모습, 둘의 배경으로 존재하던 여름과 바다, 그곳에 울려 퍼지던 ‘구름과 나’의 선율, 그리고 44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지나 열리는 공연까지, 모든 게 낭만적이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배철수#구창모#블랙 테트라#구름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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