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재산분할, 법률로 규정해야[기고/홍창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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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우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홍창우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고운 인상의 70대 여성이 사무실을 찾았다. 40년 넘게 남편의 독선적인 성격을 참으며 결혼생활을 해왔지만, 남은 여생이라도 마음 편히 살고 싶어 이혼을 원한다고 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전체 이혼 건수는 줄어든 반면에 혼인기간이 30년 이상인 부부의 황혼이혼은 오히려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세 등을 줄이기 위한 위장 이혼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70대 여성처럼 노년에라도 행복을 찾고 싶어 이혼을 결심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자녀들도 이전과 달리 부모의 선택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분위기다.

그런데 민법상 재산분할에 관한 규정은 변화된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개선이 요구된다. 먼저, 재산분할의 대상과 비율 등에 관한 기준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현행 민법은 이혼 시 재산분할에 대해 ‘가정법원은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액수 및 기타 사정을 참작하여 분할의 액수와 방법을 정한다’라는 매우 단순하고 추상적인 조문만 두고 있다. 구체적인 분할 대상과 비율 등은 모두 가정법원이 정하고 있다.

부부가 혼인 중 공동의 노력으로 취득하거나 형성한 재산은 당연히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분할 비율을 정할 때에는 ‘혼인기간, 당사자의 나이와 직업, 재산형성의 과정과 경위, 소득활동의 유무, 가사노동에 대한 기여, 이혼 후 부양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는 것이 최근의 실무 관행이다. 이처럼 판례와 실무에 의해 확립된 분할 대상과 비율에 관한 기준을 법률로 규정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많은 주(州)에서도 재산분할 시 고려할 사정들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가사노동에 대한 기여를 재산분할 기준의 하나로 명시하는 것은 변화된 사회인식을 반영하는 동시에 양성평등의 이념에도 부합하는 조치다.

또 이혼을 하지 않고도 재산분할이 가능한 ‘혼인 중 재산분할 제도’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부부 일방이 장기간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재산을 낭비할 때 이혼을 원하지 않는 상대방도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황혼이혼 부부 가운데 그런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혼인 중에도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게 한다면 경제적으로 취약한 배우자를 보호하고 불필요한 황혼이혼을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독일 등 이를 인정하는 외국의 입법례도 있다.

다른 친족법 영역은 활발한 개정이 있었음에도 민법상 재산분할 제도는 최초 도입된 1990년 이후 30년 넘게 예전의 낡은 틀을 유지하고 있다.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노년의 안정된 삶을 원하는 국민들이 많아진 만큼 상응하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홍창우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이혼 재산분할#법률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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