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와 근로기준법 제24조[동아광장/이지홍]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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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法 임금피크제 무효화 판결로 업계 혼란
‘해고 제한’ 원칙 일리 있으나 유연성도 필요
구조조정 제한한 근로기준법 수정 논의할 때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임금피크제를 무효화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판결은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개혁 언급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특히 그 의미가 크다. 대법원은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한 임금 삭감은 고령자 고용촉진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그 목적이 정당하고 또 정년 연장이나 업무 강도 완화 등 적절한 보완 조치가 있어야만 합법적인 임금피크제가 성립한다고도 했다. 노조들은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줄소송이 우려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임금피크제는 60세 이상 정년제가 시행되며 본격적으로 활성화됐으나 원래는 정리해고나 명예퇴직 대신 임금을 낮춰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 문제를 완화하고 신규 채용을 촉진하는 데 그 취지가 있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례는 표면적으론 연령 차별이란 이유에서 그 정당성이 깨졌지만 기저에 깔린 더 본질적인 이유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임금피크제의 부당함이다. 대법원은 “경영혁신과 경영효율을 목적으로 55세 이상 직원만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임금 삭감 조치를 내린 것은 정당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임금피크제를 구조조정이란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신사업 추진(경영혁신)이나 비용 절감(경영효율)을 위한 구조조정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규정이 바로 근로기준법 제24조다. 이 법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즉, 회사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 아니면 구조조정을 위한 해고는 불공정한 불법 행위란 뜻이다. 유사한 원칙이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에서도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은 한국 경제 구조의 근간을 구성하는 핵심 원칙이자 규제다. 해고는 임금 삭감의 극단적 형태이므로 임금피크제 역시 이 원칙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일관된 법과 원칙의 적용이란 측면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엔 일리가 있다. 그보다 문제는 원칙 자체에 대한 논란이 나라 안팎에서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이 어려운 한국은 각종 국가경쟁력 순위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노동유연성’ 지수에서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동유연성이 자꾸 도마에 오르는 건 한국 경제의 미래가 그만큼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구조조정 비용을 높여 성장에 필요한 사업 전환을 막거나 늦출 뿐 아니라 정규직 고용 부담을 늘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저성장·저출산이 고착화되면서 그 부작용의 위험성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은 쇠퇴하고 4차 산업혁명과 경제안보 시대까지 도래하며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이 절실한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인력의 흐름이 꽉 막힌 형국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인플레 시대에 낮은 노동유연성은 임금 상승을 부추겨 추가 물가 상승과 ‘인플레 소용돌이’를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실직자 구제 방식도 논란 대상이다. 해고가 불가능하다는 건 결국 근로자 손실을 사용자가 전부 보상해야만 구조조정이 가능하단 것과 다름없다. 그게 바로 명예퇴직이다. 임금 삭감의 반대급부가 필요하다고 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도 이런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손실 부담을 꼭 회사가 져야 하는 건 아니다.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고용보험과 재교육·재취업 정책 등 국가가 실직자를 돕는 다양한 수단이 생겼고, 이에 따른 비용도 구성원들이 십시일반 부담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가 성숙해졌다. 평생직장 개념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노사관계가 더 이상 사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만 보기 힘들어졌다.

시대가 보다 선진적인 시장과 정부의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론 기업의 구조조정 비용을 낮출 수 없다. 직접 해고 요건을 완화해 시장은 시장답게 돌아가도록 해주면서 실업 문제는 정부가 책임지는 국가 체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에서 최근 이 같은 개혁을 전향적으로 거론하는 인사들이 나오는 게 그 한 방증이다. 대법원도 며칠 전 8년 만에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해 상당히 완화된 기준을 제시했다.

근로기준법 제24조를 그대로 지속할지 여부는 국민들에게 달렸다. 전에도 논의가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결론을 내지 못한 노동개혁의 핵심 이슈다. 차제에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임금피크제#무효화 판결#근로기준법 제2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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