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용관]이준석, ‘정치 게이머’에 머물 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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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치인의 기본 덕목은 나라에 대한 ‘근심’
말재간보다 국가 의제에 대한 ‘성찰’ 더 중요

정용관 논설위원
정용관 논설위원
1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 있다. 지난해 이맘때 ‘30대 0선’ 돌풍을 일으킨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다. 착시(錯視)든 아니든 꼰대 정당 이미지를 확 걷어냈다. 숱한 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거푸 이긴 대표로 자리매김된 건 분명하다.

이 대표가 5선 중진 의원과의 설전 등을 계기로 또 여론의 중심에 섰다. 당내 의견도 분분하다. 누구는 “정치 괴물을 키웠다”며 손절을 주장하고, 누구는 “선거 때 쪽쪽 빨아먹고 내치려 한다”고 반발한다. 또 다른 이는 “젊은 층 지분이 있으니 잘 안고 가자”고 한다. 흥미로운 건 이 대표의 태도다. 이런 갈등 상황을 게임처럼 즐기는 듯하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거나 비판할 때 “한판 붙자”며 눈이 반짝거리고 신이 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치 게이머’ 같은 그의 면모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1월 초 대표 탄핵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는 위축되지 않았다. “절대 나를 자르진 못할걸”이라며 오히려 수십 명 의원들과의 일전에 빠져들었다. 30분 즉흥 연설을 통해 상황을 반전시켰다. ‘이대남’ 지지를 등에 업고 있으니 사실 예견된 결과이긴 했지만 “대단하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정치 대선배’를 겨냥해 육모 방망이까지 소환한 그의 대응이 황당하지만 ‘개소리’ ‘싸가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성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한 윤리위 회부 결정이 대표 끌어내리기인지 아닌지의 논란도 지금 필자의 관심사는 아니다. ‘윤핵관’이나 신주류 등과의 알력 다툼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보다는 정치 경력 10년이 넘는 이 대표의 정치 철학은 무엇인지, 대체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가 내심 롤 모델로 삼고 있을 법한 마크롱은 “정치는 ‘통제된 직업’이 아니다”고 했다. 기존 질서, 기존 권위에 순응하지 말고 도전하란 얘기다. 다만 마크롱은 정치를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조국에 대한 빚” “국가 미래에 대한 근심”…. 즉 프랑스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자기 해법을 갖고 있었다.

정치는 냉엄한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나라가 처한 각종 위기와 딜레마 상황에 대한 자기 생각을 드러내놓고 국민을 설득하며 지지를 확보해가는 과정이다. 이 대표는 이대남과 관련된 몇 가지 이슈에 대해 논쟁을 주도한 건 있지만 그뿐이다. 능력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는 실력주의를 내세운 것 외엔 숱한 국가 의제에 대해 뭘 말했는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우크라이나를 찾은 이 대표의 모습에서 다소 어색함이 느껴진 건 그런 이유다.

30대 원외 대표로 어떤 설움을 겪었는지, 실제로 윤핵관 측에 부당하게 휘둘렸는지는 세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새 정부 출범 1년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당 자중지란의 반사이익도 8월 전당대회가 끝나면 점점 사라질 것이다. 민주노총 등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로 움찔했던 세력들은 서서히 정권 흔들기에 나설 태세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당 대표가 혼자 따로 노는 듯한 상황이 우려될 뿐이다.

지금은 새 정부의 성공, 보수의 미래, 국가적 난제에 대한 해법 등을 놓고 심도 깊은 논쟁이 오가야 할 때다. 이를 주도하는 게 이 대표가 할 일이다. 독설과 조롱, 키배(키보드 배틀) 수준의 말재간만으론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정권 후반이면 40대에 접어든다. 보수혁신의 아이콘인지, 계륵인지의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나이 많은 게 벼슬은 아니지만, 젊은 것도 벼슬은 아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이준석#정치 게이머#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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