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5 앞세운 현대차, ‘수입차 무덤’ 日서 살아남을까[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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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작년 판매 차량 479만대중… 수입차는 5.4%인 26만대 그쳐
전기차 전환 한발 늦은 日에 검증 끝난 아이오닉5로 도전
日매체 “주행거리 길고 가격 싸”… 사실상 경쟁상대는 테슬라
韓제품 낮은 인지도 등 장벽… 韓 우호적인 20, 30대 많아 기대

현대자동차의 일본 현지법인 현대 모빌리티 재팬이 일본 도쿄 중심부 하라주쿠에 설치한 체험형 전시장 전경. 현대차는 오프라인으로는 체험 공간만 유지하고 판매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요하는 전략을 내세워 이달 2일부터 전기차 아니오닉5와 수소차 넥쏘를 판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의 일본 현지법인 현대 모빌리티 재팬이 일본 도쿄 중심부 하라주쿠에 설치한 체험형 전시장 전경. 현대차는 오프라인으로는 체험 공간만 유지하고 판매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요하는 전략을 내세워 이달 2일부터 전기차 아니오닉5와 수소차 넥쏘를 판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대단하네요. 자동차로서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힘내줬으면 좋겠네요.”

일본에서 자동차 관련 유튜브 채널 ‘E카 라이프’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현대자동차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를 시승하며 남긴 말이다. 아이오닉5의 일본 현지 시승기 중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그의 영상을 시청한 일본 소비자들이 남긴 댓글에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일본차도 분발해야 한다’ ‘위기감이 느껴졌다’ ‘좋은 물건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본 문화 특유의 다테마에(建前·속마음과 달리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를 감안하더라도, 일본 소비자나 언론 등의 평가는 상당히 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일본 시장에 재진출한 현대차의 일본 시장 성적표에 한국과 일본 양국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자동차 시장은 수입차에 대한 견고한 장벽,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낮은 인지도 등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현대차 측도 판매량보다 “배우고 도전하겠다”(장재훈 현대차 사장, 2월 8일 일본 현지 영상 발표회 중)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확인된 상품 경쟁력과 전기차로의 전환이 한발 늦은 일본 시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도 제기된다.》


○ 한류 믿고 진출했다 참패
현대차가 일본 시장 문을 처음 두드린 건 2001년이다.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한류 붐을 일으켰던 시기다. 현대차는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우 배용준 씨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쏘나타, 그랜저, 엘란트라(아반떼XD), 싼타페 등 승용차 라인업을 총출동시켰다. ‘연간 판매량 3만 대를 5년 내 달성한다’는 공격적인 목표도 세웠다.

결과는 알려졌다시피 실패였다. 일본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현대차는 2009년 철수할 때까지 9년간 승용차와 화물차, 버스 등을 포함해 누적 1만5147대, 연평균 1683대를 팔았다. 현대차의 철수는 일본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한 것과 비교돼 더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에선 2008년 한 해 동안 혼다 1만 대를 포함해 일본차가 2만 대 넘게 팔렸다.

현대차의 실패 원인으로 낮은 브랜드 인지도, 일본 소비자의 자국 브랜드 선호, 폭이 좁은 일본의 도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중대형차 위주 라인업 등이 거론돼 왔다. 텃세로 인해 판매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관세로 가격 경쟁력이 하락한 것도 부정적 요소였다.

버스 등 상용차 부문만 남겨 놓고 일본에서 철수했던 현대차는 13년 전과는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다. 전기차 아이오닉5, 수소연료전기차 넥쏘 등 2종만 선보인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이 강세인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량은 라인업에서 배제했다. 아예 미국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의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오프라인으로는 전시 공간인 ‘현대 고객경험센터’를 운영하되 판매는 온라인 플랫폼으로만 이루어지게 한 것. 현대차의 두 차종은 이달 2일 일본에서 공식 판매에 들어갔으며, 7월부터 구입자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 악화된 한일 관계도 부담
현대차의 판매 목표는 얼마나 될까. 현대차는 지난해 현대차와 제네시스 브랜드를 앞세워 해외에서 316만4143대를 판매했다. 기아를 포함하면 667만 대로, 글로벌 시장 4위 자동차그룹이다. 하지만 올해 일본 판매 목표는 겨우 몇백 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의 판매량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수입차에 우호적이지 않은 일본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차량 479만2892대 중 수입차는 5.4%인 25만9752대에 그친다. 지난해 등록된 신차 중 약 22%가 해외 브랜드였던 한국과는 다른 시장이라는 의미다.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수입차 관세를 낮춘 한국과 달리 일본은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도 FTA를 맺지 않아 수입차의 가격 경쟁력이 여전히 약하다.

13년 전보다 오히려 악화된 점도 있다. 우호적이었던 한일 관계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 강제징용 배상 판결, 대(對)한국 수출 규제 등을 거치며 완전히 얼어붙어 있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낮은 인지도에 ‘혐한’ 정서까지 맞물리면서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의 경제 불황 장기화로 자동차 산업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도 현대차에 우호적이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일본 자동차 판매량은 2018년 약 564만 대를 기점으로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 일본 전기차 시장에서 기회를 엿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기대감을 품는 건 일본 전기차 시장이 아직 ‘무주공산’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닛산(1만846대)과 테슬라(5200대) 등 2만1144대로, 전체 판매량의 0.4%에 그친다. 도요타가 4월에야 양산형 전기차 ‘bZ4X’를 들고 나왔지만 판매 전망은 우호적이지 않다. 도요타는 개인 판매 없이 매월 약 86만 원(8만8220엔)을 내는 구독형 서비스로만 bZ4X를 판매하기로 했다. 전기차 판매가 활성화되지 않았고, 충전소 등 관련 인프라 보급도 느려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중단과 전기차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 구입 보조금도 지난해 말 2배로 늘면서 전기차 판매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에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현대차의 전기차 경쟁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오닉5는 지난달 ‘월드카 어워즈’에서 ‘2022 세계 올해의 차’에 선정됐으며, 형제 차량인 기아 EV6는 ‘2022 유럽 올해의 차’로 뽑혔다. 일본 매체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도 지난달 20일 아이오닉5를 분석하며 “아이오닉5는 bZ4X, 닛산의 신형 전기차 ‘아리야’ 등 일본 전기차와 비슷한 등급인데 주행거리는 길고 가격은 싸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 소비자들의 자국 브랜드 선호도를 감안하면 현대차의 경쟁 상대는 사실상 테슬라라는 반응도 있다.

일본 내 혐한 정서 속에서도 전기차의 주요 고객층으로 분류되는 20, 30대가 한국에 우호적인 점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현대차가 일본에 재진출하며 내비게이션 등 인포테인먼트 기능, V2L(전기차 외부로 전기를 공급하는 기능) 등 정보기술(IT)을 강조하는 것도 이를 감안한 전략이다.

현 시점에서 현대차 일본 재진출의 성패를 예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마저 스마트폰에서 ‘삼성’을 떼고 ‘갤럭시’라는 이름으로만 파는, 한국 기업에 유독 어려운 시장이 일본이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이미 한 차례 실패가 있었던 만큼 두 번의 실패만은 피하기 위해 온갖 방안을 짜낼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성패는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다른 기업들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현대차#일본#전기차#자동차#아이오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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