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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택시기사가 준 비타민 음료 한 병[이재국의 우당탕탕]〈66〉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입력 2022-04-29 03:00업데이트 2022-04-29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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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평소에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앞선 미팅이 늦게 끝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택시를 예약했다. 잠시 후 도착한 택시에 올라탔는데, 타자마자 기사님이 비타민 음료 한 병을 건네주셨다.

“어?” 놀란 얼굴로 기사님을 쳐다봤더니 “아, 저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음료를 한 병씩 드리고 있습니다. 편하게 드세요”라고 말씀하시며 출발하셨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미팅 다니느라 피곤한 날이었는데 음료 한 병에 기분이 좋아졌다. “손님들한테 다 주시는 거예요?” 기사님의 마음이 고마워서 물어봤다. “가능하면 다 드리려고 합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돈인데 이거 한 병 드리면 다들 고마워하시더군요. 기분 좋게 택시를 이용하신 분들이 택시 앱에 별점을 높게 주시고, 제가 별점이 높으니까 택시 앱에서 좋은 콜을 많이 주더군요. 저 한 달에 22일 일하고 500만 원 넘게 법니다. 그중에 10% 정도는 음료 값으로 쓰고요. 손님들 기분 좋으시라고 시작한 일인데 제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하하하.”

환갑을 훌쩍 넘긴 연세였지만 왠지 에너지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택시 운전하기 전에는 대리운전을 했는데, 그때도 비타민 음료를 한 병씩 드렸습니다. 그때도 대리운전 회사 전체에서 늘 3등 안에 들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습니다.” 음료 한 병의 힘이 이렇게 크다니, 물론 친절하시고 운전도 안전하게 잘하시겠지만 작은 서비스로 큰 만족을 끌어내시는 분 같았다.

예전에 대학교 앞 맥줏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사장님이 재밌는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셔서 테이블에 있는 손님과 알바생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손님이 이기면 쥐포 한 마리를 서비스로 주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이 서비스는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금방 소문이 났고, 대학교 앞 맥줏집 중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바람에 나는 사장님에게 보너스도 많이 받았다. 얼마 전에는 소주병에 복권을 한 장씩 붙여서 판매하시는 사장님을 본 적이 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소주 한 병 팔 때마다 1000원씩 손해 보시겠지만 복권이 붙어 있는 소주병을 본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니 사실 1000원으로 가게 홍보를 하는 셈이었다. 또 누구는 복권을 받고 누구는 안 받으면 서운하니까 사람 숫자대로 소주를 더 시키게 되고, 당연히 안주도 더 시켜야 하고 그렇게 선순환이 되어 가게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러다 혹시 손님 중에 복권 1등이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대박 중에 핵대박 아니겠는가.

“기사님, 사업하셨어도 잘하셨을 거 같아요.” “사업요? 젊었을 때 사업하다가 다 말아먹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안되더군요. 남들보다 부지런하게도 해봤고, 다르게도 해봤는데 이상하게 사업은 저랑 안 맞았어요. 대리운전이랑 택시, 이거 두 개만 그나마 잘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세상일에 모두 같은 공식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는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아, 기사님이 주신 비타민 음료는 마시지 않고, 내 책상 위에 트로피처럼 올려놨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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