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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글로벌 이슈/하정민]경찰 출신 수장을 맞이하는 아시아의 진주

입력 2022-04-27 03:00업데이트 2022-05-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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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일 홍콩의 중국 반환 2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존 리 당시 정무사장이 잔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다음 달 8일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한 그는 7월 1일 홍콩 최초의 경찰 출신 수장에 오른다. 홍콩=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아시아의 진주’ 홍콩은 이후 4명의 행정장관을 맞았다. 캐리 람 현 장관과 2대 도널드 창 전 장관은 관료, 초대 둥젠화(董建華) 전 장관은 정치인, 3대 렁춘잉(梁振英) 전 장관은 기업가 출신이다. 하나같이 중국공산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지만 민간인인 이들의 치하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음 달 8일 중국이 지정한 1454명의 선거인단이 간선제로 선출하는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한 존 리 전 정무사장은 45년 경력의 경찰 출신이다. 1977년 경찰 배지를 단 그는 홍콩판 마피아 삼합회 척결, 마약 소탕 업무에서 성과를 냈고 2017년 장관급인 보안부장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그가 740만 홍콩인을 대표하는 행정장관에 오를 것이라곤 그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의 운명이 바뀐 시점은 2019년. 중국 본토로 범죄인 인도를 가능케 한 소위 송환법을 제정하려는 당국의 시도에 거센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그는 홍콩인을 머리가 나쁜 ‘타조’로 비하하고 “외국 테러 세력과 결탁해 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강경 진압을 주도했다. 200만 명의 시위대가 송환법을 반대하자 놀란 람 장관은 이를 철회했다. 중국은 람이 유약하다 여겼고 무력으로 홍콩을 다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후 홍콩은 사실상 중국이 직접 통치하는 국가로 바뀌었다. 2020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반중 활동을 한 사람을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중국이 소위 ‘애국 인사’로 부르는 친중파가 아니면 출마조차 할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에 리 또한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그는 반중언론 핑궈일보가 탄압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6월 자진 폐간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데 실력을 발휘했다. 걸핏하면 수백 명의 경찰을 동원해 핑궈일보 본사를 급습한 뒤 자산 동결, 수뇌부 체포 등을 거듭했다. 언론인을 조직폭력배 다루듯 때려잡자 버티지 못한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이후 3개 언론이 추가로 문을 닫았는데도 “국가 안보를 해치는 저널리즘에는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리가 행정장관에 이은 홍콩 2인자 정무사장에 취임한 날은 핑궈일보가 폐간한 지 불과 3일 후. 정무사장에 경찰 출신이 취임한 것도 처음이어서 당시에도 홍콩의 경찰국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했다. 그랬던 그가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중국의 낙점을 받아 행정장관에까지 오른다. 행정이나 경제금융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 국제금융 허브 홍콩의 새 수장이 되는 것이다. 그가 취임할 7월 1일이 홍콩 반환 25주년, 중국공산당 창당 101주년, 국가보안법 시행 2주년이 겹치는 날이라는 점도 공교롭다.

중국의 행보 또한 갈수록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리의 전임자 4명은 모두 단독 출마가 아니라 두어 명의 경쟁자를 뒀다. 아무리 간선제고 그 나물에 그 밥인 친중 후보끼리의 경쟁이라 해도 최소한의 구색은 갖췄다. 리는 이번에 단독 출마했고 13일 후보 등록을 하면서 선거인단의 절반이 넘는 786명의 동의 내역을 제출했다. 이미 과반의 지지를 받아 굳이 선거라는 형식조차 필요 없는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리의 최근 행보 또한 중국의 입맛에 쏙 맞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집권 후 “결과지향적인 정부를 원한다”며 중국이 제정한 국가보안법과 별도로 홍콩 자체의 보안법 또한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 보안법에서 처벌할 수 없는 항목에 대해서도 법의 잣대를 가해 반중 활동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의미다.

그는 24일 유세 때도 경찰을 대동했다. 수많은 경찰이 인(人)의 장벽을 만들었고 그가 시민과 만나는 현장은 7시간 후 공개된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신임 장관 리가 만들어갈 홍콩의 모습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이 세계 곳곳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갈수록 지구촌의 자유민주주의 또한 위기에 처할 것이란 우려가 과장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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