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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글로벌 이슈/신광영]전쟁의 여러 얼굴들

입력 2022-04-06 03:00업데이트 2022-04-06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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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역에서 한 남성이 폴란드행 열차에 어린 자녀를 태운 뒤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르비우=AP 뉴시스
신광영 국제부 차장
박완서의 첫 소설 ‘나목’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미군 PX에서 함께 일한 화가 박수근을 모티브로 쓴 작품이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곧 전쟁통에 가족을 잃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박완서는 초상화와 영화 간판을 그려 가족을 부양하는 박수근에게 큰 위로를 느꼈다.

‘그는 간판쟁이 중에서도 가장 존재감 없는 간판쟁이로 일관했다. 밑바닥 인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안에 별의별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청소부 중 중학교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고관의 미망인도 있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우리에겐 먼 과거인 전쟁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선 40일째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들려주는 생존 스토리는 전쟁의 여러 얼굴을 들춰낸다.

3월 29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브로바리에서 피란 중이던 한 여성이 딸과 함께 인터뷰를 하던 중 눈물을 터트렸다.


“집에서 대피한 저는 엄마, 쌍둥이 여동생, 이모, 사촌과 함께 히치하이킹을 했어요. 사람이 많아 아무도 태워주지 않았어요. 포성 속에 밤을 꼬박 새고 다음 날 겨우 차 한 대를 잡았어요. 제가 타고 나니 엄마랑 동생이 앉을 자리가 없는 거예요. 제가 내리면서 엄마한테 타라고 하니까 안 타겠다고 버텨서 서로 껴안고 울었어요. 보다 못한 차주분이 자기 짐을 버리고 그 자리에 포개서 타라고 했어요. 추리고 추린 짐일 텐데….”(아나스타샤·22)

“산부인과가 폭격을 당해 임신부 수십 명이 제가 있던 마리우폴 극장으로 왔어요. 붐벼서 다들 힘들었지만 임산부들에게 건물 우측 탈의실을 내줬어요. 거기가 가장 덜 추웠거든요. 하지만 그 배려가 너무 후회돼요. 러시아가 미사일로 건물 오른쪽을 때려서 임신부들은 살아남지 못했어요. 먼지 안개를 헤치고 탈출을 하려는데 아는 꼬마가 넋이 나가 있었어요. 아이 어깨를 흔들면서 소리쳤죠. ‘네 아빠가 돌아가셨어. 너는 살아야 한다. 아빠를 위해 살아야 해!’”(나디야·50대)

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에서 6살 소년 블래드 타뉘크가 집 마당에 묻힌 엄마의 무덤 옆에 서 있다. 소년의 엄마는 전쟁 이후 굶주림에 시달리다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마리우폴에선 시신을 보면 담요로 덮어줘요. 누군지 알면 이름 적은 종이를 병에 넣어 시신 옆에 두고요. 저와 간신히 이 죽음의 도시를 빠져나온 남자친구는 못 데리고 온 외할머니를 걱정했어요. 남겨진 이들이 러시아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저희는 마리우폴에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경비병에게 사정했어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요.”(안나·21)

“30년 간 마취과 의사로 일하다 은퇴하면서 유튜브로 자수를 배웠어요. 집에서 대피할 때 그동안 만든 자수 수백 점을 가방에 넣어 나왔죠. 급할 때 팔아서 비상금 벌려고요. 근데 너무 무거워서 가방을 버렸어요. 지금은 우리 군인들 입을 방탄조끼를 바느질해요.”(부텐코·65)

“체첸인인 저는 전쟁이 뭔지 알아요. 23년 전 러시아의 포탄이 쏟아지던 날, 그로즈니(체첸의 수도)에 있던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동네 벙커까지 어둡고 탁 트인 길을 내달리던 기억이 생생해요. 동생은 그날 밤 죽어서 체첸의 공동묘지에 묻혔어요. 미국 내 반전 시위에서 우크라이나인을 만났는데 제가 러시아 국적이어서 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수치심과 죄책감이 들더군요. 체첸인 친구는 동생이 러시아 군복을 입고 이번 전쟁에 투입됐는데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했어요. 그 친구는 며칠 뒤 동생이 전사한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많이 울었어요.”(밀라나)

3월 27일 키르기스스탄 서부 카라발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러시아 병사의 장례식이 열려 병사의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한 달 전 입대했어요. 누굴 해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지만 총을 안 들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놈(러시아군)들이 여기 와 있는 게 정말 화가 나요. 그래도 이 전쟁에서 죽는 사람이 최대한 없었으면 해요. 러시아 군인들도요.”(우크라이나 병사)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피란 열차를 기다리는데 독일군이 쳐들어왔던 1941년이 떠오르더군요. 머리 위로 죽음이 날아다니는 느낌…. 81년 전 그때와 똑같아요. 저는 역사가이고 홀로코스트 관련 책까지 썼는데 평생을 바친 일이 증발해버린 것 같아요. 이번엔 러시아를 피해 독일로 피란을 왔어요. 아이러니하죠.”(보리스·86)

“제가 몰던 노란색 스쿨버스를 사람들 대피시키는 데 씁니다. 한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질 못하고 강아지를 안고 울었어요. 반려동물까진 못 태우거든요. 도로에 간간히 보이는 차량 뒤창에는 ‘baby(아기)’ ‘people(민간인)’라고 쓰인 도화지가 큼직하게 붙어있어요. 공격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문손잡이 4곳에 흰 헝겊을 묶어 놓은 차도 많고요. 이제 마을은 버려진 영화 세트장처럼 황량해요. 공포영화 속에서 사는 기분이죠. 다음 포탄은 어디로 떨어질까.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세르기·57)

2월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지하철역 벤치 주변에 한 가족이 대피해있다. 배고픔에 지친 어린 자녀들이 축 처져있다.
“하루 한 번 수프 한 그릇을 받아와 2, 4, 6세 딸을 먹여요. 큰딸은 이곳 지하철역으로 오기 전날 제가 해준 롤케이크가 꿈에 나온대요. 제 직업이 제빵사인데 아이들에게 먹을 걸 못 줘서 가슴이 찢어져요. 잠시나마 배고픔을 잊게 해주려고 동화책을 읽어줘도 아이들 눈빛이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아요. 어떤 분이 꿀 한 병을 줘서 겨우 살아있어요. 한 끼에 꿀 한 스푼…. 러시아 군인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려 해서 처음엔 거절하다가 저도 모르게 ‘사탕 줘, 설탕’이라고 말했어요.”(율리야·33)

요즘 우크라이나 지하철역은 하나의 작은 마을이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는 어린이들이 서로를 뒤쫓는 놀이터가 됐고, 경사진 난간에 빨래가 널려 있다. 열차 지연 방송이 나왔을 역내 스피커에선 공습 사이렌이 흘러나온다. 선로 주변 대형 볼록거울 앞에서 10대 소녀들은 얼굴을 비추며 머리를 빗는다. 열차는 문이 활짝 열린 채 숙소로 쓰인다. 차창 앞 생수병에 꽂힌 분홍 튤립 다발이 지상의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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