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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송평인 칼럼]누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나

입력 2022-03-23 03:00업데이트 2022-03-2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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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용산 결정에 괜히 국민 들먹여
국민 다수 여론은 용산 이전 반대
文의 협조거부 몽니로 여기지 말고
尹은 심사숙고의 계기로 삼아야
송평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게 불편하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제왕적 통치에서 벗어나라고 했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가 국민을 들먹이며 스스로 안 들어가겠다고 한 것이지 국민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청와대가 공원이 되지 않아도 그 일대는 충분히 좋다.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청와대 정문 앞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서울 최고의 산책길 중 하나다. 성곽길을 따라 청와대 뒤편 북악산으로 오르는 길도 잘 조성돼 있어 굳이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청와대를 통해 올라갈 필요도 없다.

궁의 뒤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경복궁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자칫 흉흉해질 수 있는 공간에 사람 사는 활력을 불어넣는 곳이 24시간 불 켜진 청와대다. 그곳을 비워 공원으로 만드는 게 좋은 것인지 의문이다.

윤 당선인이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을 때 경호 보안 등의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서 있는 줄 알았다. 전혀 없었는데도 호언장담을 했다. 그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한 이유는 소통이었다. 그러나 그 팀은 이미 청와대에 대통령 집무실이 비서동에 자리 잡고 기자실과도 가깝다는 기본 사실도 몰랐다. 그런 팀이 최초 아이디어 이후 닷새 만에 결정한 용산 시대가 졸속이 아니라고 한다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여론조사 결과 용산 이전에 58%가 반대를, 33%가 찬성이다.

윤 당선인은 500억 원이면 이전이 완료될 것처럼 말했다. 다음 날 합동참모본부를 남태령으로 옮기는 데 1200억 원이 든다는 발표가 따로 나왔다.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짓는다면 또 큰돈이 들어갈 것이다. 정말 그 돈만 들 것인지도 의문이다.

승효상 유홍준 씨 등 문재인의 친구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청와대 흉지(兇地)론을 들먹였다. 청와대 옛 본관이 있던 수궁 터는 예로부터 길지(吉地)로 꼽힌다. 그래서 일본의 조선총독이 그곳에 관저를 지었다. 대통령들의 불운은 청와대가 흉지여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잘못해서다. 대통령 개인과 달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길지여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미사일 시대다. 이런 시대에 북한 쪽으로 가파른 북악산이 솟아 있고 양 측면으로 대공 방어망을 구축할 수 있는 산들에 둘러싸인 청와대야말로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입지할 최적의 장소다. 10년 전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5년 전 광화문 시대를 추진한 원조는 문 대통령이다. 광화문 시대는 문 대통령도, 윤 당선인도 실패했다. 당초 천혜의 길지를 두고 광화문으로 간다는 구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고 그 잘못된 구상이 다시 용산으로 간다는 더 잘못된 구상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안보 공백을 이유로 윤 당선인의 용산 구상에 제동을 걸었다. 임기 내내 한미 연합훈련을 지휘소 훈련으로 대체하고 연대급 이상 기동훈련을 없앤 대통령이 안보 운운하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고 문-윤 만남을 앞두고 인사 뒷거래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소문도 있지만 안보 공백이라는 빌미를 준 데는 윤 당선인이 책임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특히 안보와 같이 빈틈이 없어야 하는 일에는 시간이 걸려도 순서를 밟아야 한다. 용산 시대를 열려면 남태령의 수방사가 먼저 이전해야 하고, 이전 완료 후 문제가 없음이 확인될 때 합참이 남태령으로 이전해야 하고, 다시 이전 완료 후 문제가 없음이 확인될 때 국방부가 합참 자리로 들어가고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이 시작돼야 한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의 예비비 지출 결정을 몽니로 여기고만 있지 말고 지나치게 성급히 추진된 용산 시대 구상을 시간을 갖고 숙고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취임 이후 용산 집무실이 완공될 때까지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일하겠다는 무모한 고집은 접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를 잘 알지 못한다. 일단 청와대로 들어가서 경험해보라.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자세로 무슨 실사구시적인 개혁을 하겠는가. 간혹 토리와 함께 경복궁 주변을 산책하고 간혹 광화문에 나와 식사도 하면서 국민과의 소통도 시도해보라. 윤 당선인같이 혼밥을 싫어하는 성격이 해봐도 안 되면 정말 안 되는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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