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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대담]“예측불가 푸틴, 러 전문가도 멘붕” “韓늑장외교에 존재감 상실”

입력 2022-03-02 03:00업데이트 2022-03-0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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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무력도발’ 국제안보 전망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왼쪽)와 백주현 전 카자흐스탄 주재 대사가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배경과 전망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포화가 멈추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으로 교전이 거세지는 가운데 러시아는 핵전력 강화 태세에 돌입했다. 핵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폭주에 맞서 서방은 그의 돈줄을 묶는 고강도 금융제재를 꺼내들었다. 중국에 이은 러시아와의 또 다른 신(新)냉전 초입에서 두 세력 간의 충돌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러시아 무력도발의 끝은 어디이며, 이는 국제 안보질서의 판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그 진단과 전망을 듣기 위해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백주현 전 카자흐스탄 대사(법무법인 세종 러시아 담당 고문)를 만났다. 두 전문가의 대담은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푸틴이 ‘3대 핵전력’ 위협까지 본격화하고 있다.

신 교수=군사적으로는 최대한까지 가보겠다는 메시지다. 압도적인 화력을 집중하는 재래식 공격에서 핵무기로 넘어가는 그 경계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푸틴이 몰아가고 있다.

백 고문=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것인지 여부조차 지금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푸틴은 지금 패를 안 보고 그냥 베팅만 올리는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상대방이 내 패를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미치광이 전략’이다. 푸틴은 러시아에서 가장 똑똑한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디테일에 강하다. 여러 정상회담에서 지켜본 그는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법이 없고 외교적 수사도 절대 쓰지 않는다.

신 교수=
글쎄. 푸틴은 사람들이 ‘설마 저 정도까지는 안 할 거야’ 했던 걸 지금 다 하고 있다. 합리적 판단을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러시아 내 전문가들까지 지금 다 ‘멘붕’이다. 푸틴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을 서방 정보기관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푸틴이 세계질서 변경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집착하게 된다면 그릇된 결정을 하게 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서방이 ‘금융의 핵 옵션’이라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러시아 퇴출을 결정했다. 러시아가 제재를 버틸 수 있을까.

신 교수=
서방과 러시아 모두 최대치까지 서로를 때리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에너지와 식량, 국가 존속의 기본이자 핵심 조건이 되는 두 분야에서 자립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가 지난해 개정한 국가안보전략을 보라. 서방과의 협력 관련 언급이 다 사라졌다. 러시아 국민들은 이제 루블화 베이스인 ‘미르 카드’를 쓴다. 인터넷은 ‘루넷’이라고 하는 자체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제 제재에 대비해 루블 체제를 꾸준히 강화했고, 내수 기반도 탄탄히 해왔다.

백 고문=제재가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는 ‘유럽 당신들도 인플레이션 맛 좀 봐라’ 하는 식이다. 유럽이 버틸 수는 있겠지만 괴로울 거다. 러시아 천연가스 비중이 40%, 독일의 경우 55%나 된다. 더구나 독일은 제조업이 강한 나라인데, 에너지 문제로 취약해지면 강한 쇼크를 겪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강한 항전으로 러시아군이 주춤하고 있다.

신 교수=러시아가 군사행동을 길게 끌 것 같지는 않다. 공군력을 집중해서 중요한 거점들을 끊어 보급로를 차단하고, 수도를 함락시켜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시나리오는 단기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인구 4400만 명의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 러시아군이 과연 효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할 수 있을까.

백 고문=러시아의 상황 오판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에 보았듯이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돈도, 병력도, 장비도 태부족이다. 독일의 탱크가 과거 3000대였는데 지금은 300대까지 쪼그라들었다. 푸틴은 전략적으로 이런 것까지 다 계산하고 침공을 감행한 것일 수도 있다.

신 교수=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까지 3국을 엮는 연합체 구성의 욕심을 부릴 수 있다. 소련 붕괴 후 ‘벨로베스크 협정’에서 슬라브 3국의 신연방을 구성하려던 시도를 재연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으로 남더라도 곳곳이 분쟁지역화할 가능성이 있다. 게릴라전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통제가 어려워지는,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다.

―푸틴은 왜 이렇게까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나.

신 교수=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동쪽으로 자꾸 영향권을 넓히는 서방에 대한 압박도 느껴 왔다. 특히 유럽에서 대서양주의가 득세하면서 나토 중심의 유럽 안보질서가 만들어졌는데, 러시아는 여기서 배제됐다. 미국이 국제질서를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데 대한 반감도 갖고 있다. 불만이 쌓여 가던 러시아로서는 나토의 동진(東進)에 대해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안 돼’ 하는 지점이 생기게 된다. 지정학적 현실주의의 핵심은 강대국 사이의 균형이 매우 중요한데, 이게 깨진 것이다.

백 고문=푸틴의 뒤에는 ‘강한 러시아’를 원하는 민심이 있었다. 근육질의 스트롱맨 푸틴은 강한 러시아의 상징이다. 러시아인들은 서방이 자국에 대한 제재를 푼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방이 늘 자신들을 사사건건 견제하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러시아인들을 보면 ‘피해망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토는 동진을 멈춰야 하는가.

신 교수=지금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나토가 팽창적, 침략적이라고 볼 근거가 없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2017년 헌법에 나토 가입을 목표로 명시했고, 아직 회원국은 아니지만 ‘강화된 협상 대상국(EOP)’ 지위를 부여받고 군사적 협력을 강화했다. 흑해에서 나토와 대규모 연합훈련을 했다. 또 한 가지, 나토 가입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분쟁지역을 정리해야 했다. 이를 위해 루간스크, 도네츠크 지역을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여기에 더해서 크림반도까지 되찾겠다고 한 것이 푸틴을 자극했다.

백 고문=러시아로서는 나토의 동진보다 더 기분 나쁜 게 있다.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 1등이 아닌 2등이라는 거다. 군사적으로는 아직 러시아가 중국보다 훨씬 세지 않은가. 러시아의 체면이 구겨지면서 소외감이 심했을 거라고 본다. 푸틴은 이제 과거 공산주의 시절 했던 보스 노릇을 다시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신 교수=이것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에 대한 문제다. 그러나 러시아가 침공에 나서면서 러시아 입장에서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사라져버렸다. 러시아가 한 번에 다 까먹어버리고, 깨뜨렸다.

―신냉전이 시작된 것인가. 러시아의 행보는 국제 안보질서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신 교수=러시아의 침공은 커다란 두 세계 간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항하는 다극적 신세계 질서를 추구한다. 이들과 서방이 부딪히면서 커다란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는 신냉전의 시대다. 동북아 구도도 이제 완전히 바뀔 것이다. ‘신남방 대 신북방’의 대립각을 재연시킬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대러시아 제재 동참에 망설였다.

백 고문=우리 외교의 존재감이 없어졌다. 10대 경제대국이라면서 그에 걸맞은 외교가 아니라 프로토콜(의전)만 하는 수준이다. 외교는 나라의 가치와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때로 희생까지 감수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가치에 대한 판단이 보이지를 않는다.

신 교수=제재에 일단 동참하면 못 빠져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정부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를 보라. 일본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시작됐을 때 동참했다. 하지만 그 후 아베 신조 총리는 러시아가 주최한 동방경제포럼에 매번 참석했고, 북극 가스전 개발 참여와 경제투자 등을 지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머뭇거리다가 아무것도 못 했고 무역 규모는 되레 반 토막이 났다. 이런 한국에 러시아도 별로 기대가 없다.

백 고문=‘미련 때문에, 사랑 때문에’라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 어떤 조치로 인해 남북 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한국적인 정체성에 기반해 우리 외교의 이익을 규정하는 합의의 기반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자강의 힘은 하드파워 외에 우리의 가치, 그 가치를 기반으로 한 외교, 그리고 꾸준한 대외정책의 추진을 통해 얻게 되는 국제사회의 인정과 존경에서 나온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제관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복합안보센터장,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사단법인 유라시아21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유라시아의 도전과 국제관계’ 등의 저서를 냈다.


백주현 前 카자흐스탄 대사
1985년 외교부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주소련 한국대사관 창설 등 러시아 관련 업무를 맡았다. 1993년 러시아 외교아카데미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카자흐스탄 대사, 주휴스턴 총영사를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세종 러시아 담당 고문을 맡고 있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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