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나랏빚 늘리는 ‘경제 대통령’도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3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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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덕분에 온 국민이 경제 공부 참 많이 한다.

일단 ‘기축통화국’이 뭔지 알게 됐다. 21일 TV토론에서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며칠 전 보도에 나왔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22일 ‘유능한 경제대통령’ 표어가 붙은 패널 앞에서 유세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2일 ‘유능한 경제대통령’ 표어가 붙은 패널 앞에서 유세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 이재명이 잘못 읽은 보도자료

한국은행의 온라인 경제용어사전은 기축통화를 ‘여러 국가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국제거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통화를 지칭한다’고 정의한다. 국제무역결제에 쓰이고, 환율평가 할 때 지표가 되며,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되는 통화가 기축통화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이 될 것 같진 않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국제결제 시 사용하는 통화 비율이 미국 달러화(39.92%) 1위, 유로(36.56%)가 2위다. 영국의 파운드(6.3%) 3위이고 원화(0.2%)는 20위에도 들지 못했다.



이재명이 봤다는 보도는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낸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추진 검토 필요’라는 제목의 자료였다. 제목만 딱 봐도 원화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편입되는 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재명 후보가 21일 TV토론에서 언급한 전경련 보도자료.
이재명 후보가 21일 TV토론에서 언급한 전경련 보도자료.


● 틀려도 인정하지 않는 고집은 뭔가

이쯤 되면 기축통화국에 대해선 잘못 알았다고 후퇴할 만하건만 이재명은 그러지 않았다. 23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축통화국 발언도 얘기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좀 길다. 참고 봐주시기 바란다).

“그게 우리나라 국채비율이 너무 높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높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으니까 나온 논리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였어요. 예를 들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도 (국채비율) 100% 넘는 나라가 훨씬 많고 그리고 그런 나라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축통화국 얘기는 제가 하자고 한 게 아니고 전경련에서 그런 발표를 했고, IMF에서 특별인출권이라고 이게 기축통화냐 아니냐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데 거기서 SDR에 원화를 포함시키는 검토 이번에 합니다. 전경련에서 한 거고요.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으로 인정된 나라보다 국가신용등급이 훨씬 높고 예를 들면 외환 돈 빌릴 때 이자도 다른 나라 기축통화국보다 훨씬 낮아요. 국가신용 정도나 화폐 객관적 가치나 훨씬 높은 상태라서 기축통화국이 형식적으로 아니니까 부채비율이 더 낮아야 된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고요. 국가부채는 대외부채가 아닙니다. 국내 기관들이 사잖아요. 우리 국내에서 채권 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국제평가에 해악될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IMF가 오는 건 아니거든요. IMF는, 그때 당시 국채비율은 엄청나게 낮았습니다. 거의 없다시피 했죠. 그 당시하고 연결되면 안 된다 말씀드리고요. 기축통화국은 실제로 SDR 얘기 특별인출권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라는 보도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23일) 中

유창하되 장황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독자들 실감하시라고 일부러 그대로 실었다). 그래서 그의 말만 들으면 사람들은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그게 뭐였더라…혼돈스러워지기 십상이다. 대장동이 그랬고, 기축통화국이 그렇다. 자칫하면 ‘경제 대통령’ 선전도 홀랑 넘어갈 공산이 크다.

● 전경련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전경련이 ‘기축통화’를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기준’으로 판단한 건 맞다. 여기엔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위안화가 들어간다. 전경련은 원화도 SDR에 ‘편입’되도록 ‘추진’할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희망’했을 뿐이지, 곧 기축통화국이 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회관 입구. 동아일보DB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회관 입구. 동아일보DB


TV토론 후 논란이 커지자 전경련은 22일 입장문까지 냈다. “한국이 비(非)기축통화국의 지위로서 최근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고, 국제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무역수지마저 적자가 지속될 수 있어 신용등급 하락 등에 따른 경제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원화의 SDR 편입을 희망한다는 메시지였던 것”이라고 분명히 설명했다.

그런데도 23일 이재명은 “기축통화국은 실제로 SDR 얘기 특별인출권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라는 보도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전경련을 거짓말쟁이처럼 만든 것이다. 방송만 들은 사람들은 이재명을 정말 유식한 ‘경제대통령’처럼 인식할 판이다.

● 벌지는 못할망정 나랏빚 늘리겠다니

지겨운 기축통화국 얘기는 끝났다고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건 이재명이 이 논리를 국채발행 여력이 많다는 근거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TV토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재정건전성이 중요한 이슈인데 국채는 얼마든지 발행해도 된다는 뜻인지?” 물었다. 그러자 이재명은 “국채발행 비율이 다른 나라는 11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50%가 안 된다. 이유는 국가가 가계소득지원을 거의 안했기 때문”이라며 “IMF나 국제기구들은 85%정도까지 유지하는 것이 적정하니 너무 낮게 유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1일 진행된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정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뒷모습)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1일 진행된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정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뒷모습)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여기서 또 IMF가 그랬다, 안 그랬다며 논란을 벌이고 싶진 않다(그러지 않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소득을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대체 왜 나랏빚만 늘리려 드느냐는 것이다. 빚만 늘리고도 경제 대통령이라면, 성적을 떨어뜨려 빵점만 맞고도 우등생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랏빚의 두려움

우리에게는 나랏빚 트라우마가 있다. 1997년 ‘IMF 위기’라는 외환위기 이후 생긴 병이다. 이재명은 “국가채무 비율이 100%를 넘겨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외환위기는 단기채무가 과다한 상태에서 국가 및 금융기관의 신인도가 급격히 하락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당시는 채무비율이 11.4%여서 그나마 빠르게 극복했지만 국민은 금 모으기까지 하며 절감했던 나랏빚의 무서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진정 이재명은 ‘경제 대통령’이고 싶은가. ‘전환적 공정성장’이라는 공약은 좋다. 기회의 총량이 증가한 사회, 기대하겠다. 그러나 나랏빚은 꿈도 꾸지 말았으면 한다. 수내동 집에서 한우는 법카로 사서 먹었으면서 왜 미래세대에게는 빚부터 안길 작정이신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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