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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송평인]가짜 깃발 작전

입력 2022-02-21 03:00업데이트 2022-02-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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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이나 파시스트가 일으키는 전쟁에서는 가짜 깃발 작전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독일이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날 SS대원 7명이 폴란드인을 가장해 국경 인근의 독일 라디오 송신탑을 장악하고 그 사실을 알리는 방송을 내보냈다. 히틀러는 자국 시설이 공격받았다며 폴란드를 침공했다. 같은 해 핀란드와의 국경에 위치한 한 러시아 마을이 포격을 받았다. 소련은 핀란드군이 포격을 한 것이라며 핀란드를 상대로 겨울전쟁을 개시했다. 포격은 실은 소련 보안기관의 자작극이었는데 소련 해체 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비로소 그 사실을 시인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는 러시아 군복을 입었지만 부대 기장을 달지 않은 사람들이 무장한 채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에 나타났다. 러시아는 그들이 우크라이나의 지배에 반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군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번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가짜 영상을 만들어 뿌리는 작전을 펴고 있다. 영상 속에는 돈바스 지역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포탄 공격을 받고 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로 피란하는 모습이 담겼다.

▷가짜 깃발이란 말은 해적들이 상선에 접근하기 위해 그 상선에 우호적인 나라의 깃발을 건 데서 비롯됐다. 가짜 깃발 작전은 나중에 국제해양법에 의해 해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가짜 깃발을 걸고 공격한 직후에는 즉시 진짜 깃발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도 진짜 깃발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을 둘러싸고 공격 준비를 끝낸 지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해서 얻을 게 없다. 군사력도 러시아에 비해 턱없이 약하다. 세력 관계에 비춰 우크라이나의 선제공격은 날조다. 그러나 러시아의 자작극 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측 도발에 피치 못해 한 대응을 우크라이나의 선제공격인 양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면 보는 이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에는 당하고 있을 수만 없다고 판단했는지 러시아가 제작하는 가짜 영상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공개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스관 폭파 자작극에 이어 화학공장 폭파 자작극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전 세계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시대다. 스마트폰을 통해 한쪽에서는 가짜 영상을 뿌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짜임을 폭로하고 있다. 누가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이 미래형 전쟁의 승자가 될 것인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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