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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송평인]‘벽을 뚫고 간’ 황대헌

입력 2022-02-11 03:00업데이트 2022-02-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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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1000m 준결선 경기에서 황대헌 선수가 1, 2위로 앞서가던 중국 선수 2명을 순식간에 제치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인만 애국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님은 생중계하던 미국 NBC 방송의 해설자도 놀라면서 ‘교과서적인 (완벽한) 추월’이라는 찬사를 보낸 데서 드러난다. 그러나 황 선수는 그 장면 때문에 실격됐다. 중국 선수들이 그 덕에 결선에 올라 금·은메달을 따자 ‘이따위 경기는 해서 뭐하나. 차라리 보이콧하고 돌아오라’고 할 정도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누구보다 실의에 빠졌을 사람은 4년간 피땀 흘려 훈련해온 황 선수 자신이다. 그는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나중에 얘기할게요’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의 시간을 그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날 밤 그의 인스타그램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마이클 조던의 말이다. ‘장애물이 너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벽에 부닥쳤을 때 포기하고 돌아서지 마라. 벽을 기어오르든, 벽을 뚫고 가든, 벽을 돌아가든 방법을 찾아라.’

▷다른 사람 같으면 심판을 탓하고 중국을 탓할 시간에 그는 방법을 찾았다. 이틀 뒤 1500m 경기에서 찾은 답을 보여줬다. 그는 뒤쪽에서 기회를 엿보다 결승선을 9바퀴 남기고 치고 나가 순식간에 선두로 올라섰다. 여기까지는 늘 하던 것이다. 이후 9바퀴를 계속 선두에서 도는 건 체력이 바닥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판정 시비를 초래할 접촉을 아예 피하기 위해 그 방법을 택했다. 마지막 바퀴에서 그는 극한의 질주를 하는 듯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더 이상 체력이 아니라 분노의 힘으로 달리는 듯했다.

▷그가 금메달을 따자 한국 선수들이 늘 반칙으로 메달을 딴다고 우기던 중국은 야단맞은 학생처럼 조용해졌다. 한국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것 봐라’ 할 여유를 갖게 됐다. 그럼에도 황 선수의 실격 사유인 ‘접촉을 일으킨 뒤늦은 추월(late pass causing the contact)’이 과연 있었는지 국제재판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밝혀야 한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내려오는 사다리 같은 건 없다. 조던처럼 부단히 노력해서 실력을 쌓는 사람에게만 벽을 극복할 길이 보인다. 벽이 나타나면 그 벽을 극복하기 위해 실력을 쌓고, 다시 실력을 쌓다보면 새로운 벽이 나타나도 그 벽을 극복할 길이 반드시 생긴다는 사실을 23세의 젊은이가 보여줬다는 점이 장하다. 그런 정신이라면 어느 분야의 어떤 벽도 극복하지 못할 게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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