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용]인도 현대차 ‘억울한 불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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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역사의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팀 워싱턴 ‘레드스킨스(빨간 피부)’의 구단 명칭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구단명을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은 있었지만 늘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그러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차별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기업 평판이 급락하는 위기에 구단은 일단 ‘풋볼팀’이라는 밋밋한 이름으로 바꾼 뒤 이달 초 ‘커맨더스’로 완전 개명했다.

▷인종, 종교, 정치 등 경영 외적인 이슈들이 기업 이미지와 실적에 큰 영향을 주는 ‘소셜 리스크의 시대’다. 현대자동차의 파키스탄 현지 협력업체가 5일 ‘카슈미르 연대의 날’을 맞아 “카슈미르인 형제들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인도인들 사이에서 현대차 불매 조짐이 일고 있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인도가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줄곧 영유권 문제를 두고 충돌해온 화약고다. 이번 SNS상의 한 줄 글이 그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문제가 된 글이 올라온 SNS는 파키스탄 내 독립 대리점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계정이다. 특정 지역의 정치 종교적 이슈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비즈니스 정책을 갖고 있는 현대차로선 황당할 것이다. 게다가 파키스탄에서 영업 중인 혼다, 스즈키, GM 등 다른 나라 업체도 카슈미르 연대와 관련한 글을 올렸지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SNS 팔로어 수가 다른 업체보다 월등히 많다는 게 평소에는 강점이었지만 민감한 이슈가 부각될 때는 약점이 됐다.

▷요즘의 소셜 리스크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고 일단 터지면 그 전파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원래 기업의 평판은 영업 성과와 구성원들의 행동,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물이다. 평판은 쌓기도 어렵지만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치 종교 인종 문제와 결부된 리스크가 이 평판을 무너뜨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될 수 있다.

▷예측 불가의 리스크를 기업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연결된 세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와 각국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국가에까지 해명을 요구한다. 이번에 인도 외교부는 한국대사를 소환하고 외교부 장관에게까지 전화했다. 그 과정을 전달받은 인도 소비자는 기업의 평판을 다시 매길 것이다. 과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였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오늘의 기업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관계를 제대로 맺는 책임까지 요구받고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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