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하이브리드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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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공격으로 전면전을 유발하는 것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전쟁을 시작하는 주된 방식이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여섯 달 뒤인 12월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은 소련과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초래한 기습공격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도 북한 김일성의 전격적인 남침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과연 이것이 전쟁의 시작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쟁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2001년 알카에다가 납치한 비행기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충돌했을 때 미국인이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범죄와의 전쟁’처럼 비유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으로 불렸던 것은 실제 전쟁이었다. 미군은 곧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쳐들어가서 최근에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고 이라크에는 아직 남아 있다.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34일간이라는 짧은 기간에 벌인 전쟁이었지만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열었다. 전쟁과 평화,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고 국적을 뛰어넘어 뒤엉켜 싸운다고 해서 하이브리드다. 제2차 레바논 전쟁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면적 도발보다는 단계가 낮은 로켓포 공격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공군으로 헤즈볼라의 은신처를 공격했으나 계속 로켓포 공격을 받았고 레바논에 진입해서는 친(親)헤즈볼라 의용군을 상대하느라 힘들어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장악한 우크라이나 사태도 하이브리드 전쟁의 양상으로 진행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친(親)러시아 우크라이나인이 반(反)러시아 정부에 항거해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포장했다. 실제로는 군복에서 부대 기장을 떼어낸 러시아 군인들이 러시아로부터 자금과 무기를 지원받는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반군들과 함께 싸웠다.

▷러시아가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배치해 다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얼마 전 정부 홈페이지가 일제히 해킹 공격을 받아 시스템이 마비됐다. 미국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 또는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를 공격하는 가짜 영상을 입수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무력 사용에 앞서 사이버의 위력을 최대한 활용한 정보전과 선전전을 펼쳐 상대방의 싸울 의지 자체를 꺾는 것 역시 하이브리드로 개념화되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수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하이브리드#레바논 전쟁#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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