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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동국의 길’ 가는 박주영을 주목하며 박수를 보낸다[광화문에서/양종구]

입력 2022-01-19 03:00업데이트 2022-01-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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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2009년 1월 프로축구 성남 일화에서 방출당해 은퇴의 기로에 놓여 방황하고 있었던 이동국은 당시 최강희 전북 감독을 만나며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1998년 포항제철고를 졸업하고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그해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해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방출 당시엔 대부분의 감독들이 “이동국의 시대는 갔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평소 이동국의 플레이를 눈여겨보던 최 감독은 달랐다. “넌 아직 은퇴할 때가 아니다”라며 용기를 주는 최 감독의 말에 자포자기하고 있었던 이동국은 강한 재기의 의지를 보여줬다.

최 감독은 이동국에게 “넌 골만 넣으면 된다”며 수비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 여타 감독들과는 다른 주문을 했다. 최 감독은 골문 앞에서 흥분하지 않고 발과 머리로 골을 잡아내는 이동국의 특성을 잘 활용했다. 이동국은 2009년 당시까지 역대 개인 최다인 22골을 터뜨리며 전북의 K리그 우승을 주도했다. 2020년 말 은퇴할 때까지 이동국은 전북에만 10개의 우승컵을 안겼다. 2012년엔 한 시즌 국내 선수 최다인 26골을 기록했다. 이동국은 프로 인생 전반전인 1998년부터 2008년까지 64골 29도움을, 후반전인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164골 48도움을 기록했다. 이동국은 선수론 ‘환갑’으로 불리는 41세까지 뛰었다.

최근 올해 37세인 박주영이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2005년 FC 서울로 데뷔한 박주영은 ‘축구 천재’로 불렸다.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68경기에서 24골을 넣고 3회 연속 월드컵(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에 출전했다. 6년 유럽 생활을 빼고 서울에서만 뛰어 ‘서울 맨’으로 불렸지만 지난 시즌을 마치고 최대 위기를 맞았다. 1년 동안 골과 도움인 공격포인트가 하나도 없었다. K리그에서 12시즌을 보내며 76골 23도움을 기록했던 박주영이 한 골도 넣지 못한 것은 지난해가 유일했다. 서울은 “이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유소년 지도자를 하라”고 제안했지만 박주영은 “선수로 더 뛰겠다”고 버텼다.

결국 어느 팀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은 박주영에게 홍 감독이 손짓했다. 홍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으리’라는 비난을 받고서도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뽑아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홍 감독은 그때 지켜봤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후배들을 잘 다독이는 박주영의 리더십을. 지난해 K리그 사령탑을 처음 맡은 홍 감독으로선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박주영 같은 고참이 필요했다. 박주영은 자신을 믿어주는 지도자 밑에서 제대로 한번 보여주고 은퇴하고 싶었다.

박주영이 이동국처럼 성공 스토리를 쓴다면 그 파급 효과는 클 것이다. ‘제2, 제3의 박주영’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이제 선수 생명도 그만큼 길어져야 한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는 35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37세인데도 아직 세계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노장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에선 그 나이면 ‘뒷방 선수’로 낙인찍힌다. 박주영의 활약에 주목하는 이유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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