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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송평인 칼럼]문과의 위기 그 자체인 이재명과 윤석열

입력 2021-12-29 03:00업데이트 2021-12-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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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의 위기는 단지 취업난 아냐…대학 교육의 근본 결함에서 비롯
浮薄한 정치 면하지 못하는 건 문과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송평인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없을 때 많은 문과생들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느라 전공 공부를 등한시했다. 로스쿨이 생기자 그런 현상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도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한 후 원하면 로스쿨에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과가 과거 법학 천하였다면 지금은 경영학 천하가 됐다. 요새 문과생의 상당수는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택한다.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렇게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를 함께 공부하다 보니 둘 다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졸업한다.

미국 대학의 특징은 순수학문과 직업 교육을 분리한다는 점이다. 낮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칼리지(college)에서, 높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전문대학원(professional school)에서 한다. 법학과 경영학은 전문대학원에서만 가르친다. 학부에서 순수학문을 한 후에야 계속해서 석·박사 과정을 하든, 아니면 로스쿨이나 MBA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델라웨어대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뒤 나중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기 전에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해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982년 중위권 대학 법대에 학비에 더해 생활지원금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들어가 그 대학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려주기 위해 죽어라고 사법시험 공부만 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악착같은 생존 본능에 법 지식만 갖춘 사람이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다닌 서울대 법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윤 후보는 9수를 했다고 하니 20대 청춘을 온전히 사법시험에 갖다 바쳤다는 얘기다. 9수가 가능했던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한량 특유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만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문과의 위기는 단지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로 표현된 그 분야 교수와 학생만의 위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 인문사회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계 관계 재계로 진출해 지도층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위기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그렇지 않아도 교육비로 허리가 휘고 있는데 고등교육을 4년이 아니라 6, 7년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대학의 개혁은 공교육의 강화, 장학제도의 확대 등이 동반돼야 한다. 다만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사회 지도층의 평균 학력 수준이 우리의 석사 수준이라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10대학에서 철학으로 DEA(후에 master로 통합), 파리정치대(Sciences Po)에서 공공정책으로 마스터(master)를 받은 뒤 고위직 공무원이 되기 위한 직업학교(그랑제콜)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다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6년 과정의 함부르크대 법대를 나왔다.

프랑스 대학에서는 리상스(licence)에 3년, 마스터(master)에 2년이 소요된다. 독일 대학은 학위 구분도 없이 기초과정(Grundstudium)과 본과정(Hauptstudium)으로 나누고 합쳐서 평균 6년이 걸리는 본과정까지를 마쳐야 마기스터(Magister) 같은 최초의 학위를 준다.

중요한 점은 리상스나 기초과정에서 입학생의 절반 정도가 탈락한다는 사실이다. 리상스를 통과하면 대개 마스터 단계까지 간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다’ 함은 마스터나 본과정을 마쳤음을 의미한다. 이 나라들에서 대졸은 우리의 석사 수준인 셈이다.

문(文)·사(史)·철(哲)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실 추구의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 점이 직업 교육과 다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은 우리 정치의 부박(浮薄)함은 그런 교육의 부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누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누구는 거짓 서류를 밥 먹듯이 꾸민 집안과 연을 맺는다. 문과의 위기는 취업난 정도로 봐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선진국 문턱에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대학 제도의 결함으로 봐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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