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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로마의 휴일’, 영화 속 휴일[클래식의 품격/노혜진의 엔딩 크레디트]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
입력 2021-12-14 03:00업데이트 2021-12-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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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펙 주연의 ‘로마의 휴일’(1953년)은 ‘올 로케’ 촬영으로 수십 년간 로마에 관광객을 끌어들인 영화다. 그곳을 직접 3D 컬러로 경험한 사람들도 흑백 필름으로 찍은 ‘로마의 휴일’을 볼 때나 기억할 때는 그 영화만의 생생한 세계가 있고, 그 안에 들어갔을 때 선명한 흑백 전경들과 헵번의 아름다움이 살아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아카데미상 촬영상, 작품상, 감독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여우주연상, 스토리상, (흑백) 의상상을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스토리와 각본을 실제로 쓴 돌턴 트럼보는 당시 매카시즘 광풍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친구의 이름을 빌려 일해야 했다. 그는 사후에야 이 영화 아카데미상과 크레디트를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공주인 앤(오드리 헵번)은 빽빽한 유럽 순회 일정과 왕실의 제약에 진력이 나서 어느 날 밤 로마 대사관을 빠져나온다. 그런데 수면제가 들어간 주사를 맞은 탓에 길거리에서 잠든다. 이를 우연히 발견한 미국 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가 앤을 집에 데리고 가 재워준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된 조는 특종을 잡기 위해 모르는 척, 하루를 즐겁게 같이 보내기로 하고 사진기자인 친구 어빙도 불러들여 몰래 사진을 찍게 한다. 그런데 결국 서로 애정이 싹트면서 조는 기사를 취소하고, 다음 날 기자회견장에서 어빙도 사진을 그녀에게 넘기는 데서 짧은 일탈과 로맨스가 마무리된다.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공주는 국빈을 맞이하는 무도회에서 긴 드레스 속에 한쪽 신발을 벗었다가 놓치는 등 영화는 처음부터 계속되는 가벼운 상황 개그로 웃긴다. 그리고 로마의 거리를 질주하는 스쿠터로 본의 아니게 난동을 벌이고, 강가의 유람선 댄스장에 공주를 찾아온 요원들과 벌인 대대적인 싸움에선 액션물 요소도 선사한다.

로마를 돌아다니면서 ‘진실의 입’이라는 대리석 벽면 가면에서 거짓말쟁이가 손을 집어넣으면 잘린다는 전설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펙은 감독 윌리엄 와일러와 작당하여 손을 넣었다가 잘린 것처럼 양복 소매 속으로 손을 숨겼다가 헵번을 실제로 놀라게 하는 데 성공하여 더욱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는 원래 계약상 단독 주연 크레디트를 받기로 돼 있었는데, 촬영 도중 헵번의 크레디트를 올려주지 않으면 자기만 바보가 될 것이라며 그녀의 첫 할리우드 영화 주연 크레디트를 로비하는 데 성공했다. 아카데미상을 탈 인물이라는 걸 이미 예상했던 것이다.

영화 속 일탈을 보며 우리도 일탈을 즐기게 된다. 공주는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그 하루 일탈의 추억을 평생 간직할 것이다. 관객으로서 우리는 ‘로마의 휴일’을 평생 간직할 수도, 언제든지 찾아볼 수도 있어 행운이다.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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