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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화교 대량탈북 시대

입력 2021-12-09 03:00업데이트 2021-12-0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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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019년 1월 황해남도 해주에 사는 화교 가정을 위로 방문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수천 명의 중국 화교가 거주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올해 7월 2일 리진쥔(李進軍)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대사관에 이례적으로 화교들을 대거 초청해 ‘중화의 아들 딸’이라며 치켜세우는 일이 있었다. 좀 이상하다 싶었다. 보름쯤 지나 북한에서 살던 화교들이 비공개로 대거 중국에 나오면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들이 몰려와 귀국시켜 달라고 성가시게 하니 달래느라 그랬던 모양이다. 북한은 올해 딱 한 번 중국과의 인적 왕래를 허용했는데, 화교들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화교들이 나오던 날 중국은 수감 중이던 탈북자 가운데 북한이 요구한 주요 인물 50여 명을 북송했다.

요즘 북한 화교들의 신세가 말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자 최대 피해자가 됐다. 일부 지역에선 화교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북한 내 화교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광복 직후 8만 명이었지만, 중국 내전 종식과 6·25전쟁 발발로 대거 돌아가 1958년경 1만4000여 명이 남았다. 중국이 잘살면서 귀국자는 더욱 늘어나 2001년 6000여 명이 남았다. 절반 이상이 평양에 살고, 평북, 자강도, 함경남북도에 각각 300가구 정도 거주한다고 한다.

화교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북한 내 부유계층으로 급부상했다. 중국을 오가며 장사해 돈벌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2년 가까이 국경이 막히자 돈줄이 막혔다. 장사 밑천을 중국에 보낸 상태에서 봉쇄를 당했다면 더욱 비참한 상황이다. 중국에서 송금받을 길도 막혔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귀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7월 다행하게 귀국길에 오른 화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희망자들은 언제 중국에 갈지 기약도 없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제 다시 국경이 열리면 2차 귀국 희망자들이 출발한다고 하는데, 아직 화교가 중국에 또 나왔다는 소식이 없다. 화교들을 돌려보내면서 북한은 중국에 무기한 체류 중인 소수의 북한 외교관과 무역일꾼의 귀국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 북에서 살고 있는 화교 상당수는 북한 국적의 배우자와 자녀들 때문에 버티고 있었는데, 이젠 가족도 두고 나와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같이 굶어 죽기보단 중국에 한 명이라도 나와야 입을 덜 수 있고, 또 중국에서 돈을 벌어야 나중에 가족에게 보낼 기회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경제적으로 버틸 여력이 있는 화교가 더 많겠지만, 어쨌든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북한 내 화교 수는 다시 확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 돌아간 화교를 북한이 나중에 다시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 당국은 화교들이 가족과 생이별하고 탈북하는 사태를 내심 반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눈엣가시 같은 화교들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북한의 시각에서 봤을 때 화교들은 여러모로 거의 도움이 안 되는 존재다.

그 이유는 첫째, 화교들이 중국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싣고 와 장마당에 넘기면 북한 내 외화가 화교의 손에 들어간다. 물건을 수입해 파는 것은 북한 무역일꾼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역회사는 이윤의 상당수를 당국에 바치지만, 화교는 번 돈을 자기가 다 가진다.

둘째, 화교들이 잘사니 북한 내에 미치는 영향이 좋지 않다. 화교들이 부유해질수록 북한 사람들은 “왜 저 사람들은 점점 부자가 되는데 우린 점점 가난해지느냐”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셋째, 화교가 중국을 자유롭게 오가니 북한 내부 정보가 많이 유출된다.

넷째, 탈북을 막는 데 화교가 방해물이 된다. 화교 중에는 한국이나 중국에 사는 탈북민이 북한 가족에게 보내는 돈을 중개하는 사람이 꽤 있다. 돈도 많고, 중국에 연고도 있으니 돈놀이를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북한 당국이 이들을 잡아다 처형할 수도 없는 일이라 골치 아프다. 탈북민이 북에 보낸 돈은 가족의 생계 비용도 되지만, 한편으론 탈북 비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젠 한국에 연고가 없어 돈을 지원받지 못하면 탈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여러모로 당국의 골칫거리인 화교가 코로나로 국경을 봉쇄하자 제 발로 중국에 돌아간다고 하니 북한 당국으로선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내심 싹 다 돌아갔으면 싶을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코로나 봉쇄가 풀려 화교들이 다시 북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겠다고 하면 승인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북한에 살던 화교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크게 보면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북한과 외부를 연결하던 끈이 줄어드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화교들마저 씨가 마르면 북한은 정말 외부와 격리된 완벽한 ‘인민의 수용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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