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시름겨운 밤배[이준식의 한시 한 수]〈136〉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1-11-26 03:00업데이트 2021-11-26 03:05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달 지자 까마귀 울고 찬 서리 천지에 가득,

강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한 시름겨운 잠자리.

고소성 너머 한산사,

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의 뱃전에 들려오네.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

월락오제상만천, 강풍어화대수면. 고소성외한산사, 야반종성도객선.

- ‘풍교에서의 하룻밤(풍교야박·楓橋夜泊)’장계(張繼·당 중엽)

성 밖 다리께 정박한 배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객수(客愁)에 젖는 시인. 달빛마저 사라진 어둠 뒤로 까마귀 울음이 퍼진다. 서리 기운이 자욱하게 온 천지를 뒤덮었고, 고깃배가 밝힌 어화(漁火)의 명멸 속에 설핏설핏 단풍 잎사귀가 어른거린다. 이때 문득 뱃전에 퍼지는 산사의 종소리, 한밤의 어둠과 정적을 깨는 종소리에 시인의 시름은 끝 간 데 없이 깊어만 간다. 일렁이는 밤배에 묵으며 시름겨운 불면의 밤을 마주해야 했던 사연은 알 길이 없다. 과거 낙방 후 씁쓸한 귀향길, 아니면 전란 후 타향을 전전한 하급관리의 향수병 등 억측만 분분하다.

고소성은 중국 강남의 대표적 수향(水鄕)인 쑤저우(蘇州)의 옛 이름. 마르코 폴로가 ‘동양의 베네치아’라 불렀던 별칭에 걸맞게 도시 전역에 수로가 퍼져 있고, 곳곳에 자그마하고 정교한 다리들이 많다. 풍교도 그저 그런 다리 중의 하나였지만 이 시에 등장한 이후 유명세를 탔다. ‘300개 아름다운 다리가 물의 고장에 빛나지만, 시에서는 오로지 풍교만이 유명하지’(명대 시인 고계·高啓)란 시구가 이를 증명한다. 이 시의 지명도를 한껏 높여준 이는 아무래도 송대의 구양수(歐陽脩). 그는 절에선 야밤에 종을 치지 않는데 장계가 멋진 시구를 탐하다 그만 병폐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한밤중의 타종’은 흔한 사례였고, 이를 묘사한 시구 또한 적지 않다. 대문호의 잘못된 지적이 오히려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킨 셈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