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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시인의 일탈[이준식의 한시 한 수]〈137〉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1-12-03 03:00업데이트 2021-12-0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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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해 잠시 환락을 탐하노니, 어찌 시름에 잠길 여유가 있으랴.

요즘에야 비로소 깨달았네, 옛사람의 책, 전적으로 믿을 순 없다는 걸.

어젯밤 소나무 곁에 취해 넘어졌을 때, 내 취한 꼴이 어떠냐고 소나무에게 물었지.

소나무 움찔대며 나를 부축하려나 싶어, 손으로 밀치며 말했지, “비켜!”

(醉裏且貪歡笑, 要愁那得工夫. 近來始覺古人書, 信著全無是處. 昨夜松邊醉倒, 問松我醉何如. 只疑松動要來扶, 以手推松曰去.)

(취리차탐환소, 요수나득공부. 근래시각고인서, 신저전무시처. 작야송변취도, 문송아취하여. 지의송동요래부, 이수추송왈거.)


‘마음을 달래며(견흥·遣興)’·‘서강월(西江月)’ 신기질(辛棄疾·1140~1207)

아무 근심 없이 술과 쾌락에 탐닉한다는 고백, 게다가 만고의 진리라 믿었던 선현들의 책조차 다 믿지는 못하겠다는 선언이 별스럽다. 이런 상궤를 벗어난 발상이 왜 나왔을까. 치기어린 일탈처럼 보이지만 기실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 지독한 아이러니로 보인다. 중원 땅을 금나라에 내주고 남쪽 구석에 안주하던 남송 조정의 안일과 무능을 비판해왔던 시인. 환락에 취한 저들이 무슨 나라 걱정할 여유가 있으랴 질타한다. 옛 경전은 혹 애국 애족을 논하고, 혹 정치의 도리를 설파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때로 전도된 가치로 뒤덮일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소나무와의 실랑이에서 자기 각성의 몸짓을 드러낸다. 흠뻑 취해 쓰러졌을지언정 그 누구의 도움도 단호히 거부한다는 강고한 의지로 읽힌다.

무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면서도 시인은 ‘장자’ ‘맹자’ ‘사기’ 등을 곧잘 활용할 만큼 고전에 밝았다. ‘옛사람의 책, 전적으로 믿을 순 없다’는 구절은 맹자가 ‘서경(書經)의 내용을 전적으로 믿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라 한 말을 활용한 예다. 기록의 진위를 잘 판별하라는 맹자의 원래 취지와는 상관없이 시인은 그 화법만을 따왔다. ‘서강월’은 곡조명으로 내용과는 무관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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