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테 물려 죽은 사람은 없어”[서광원의 자연과 삶]〈4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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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초등학교 시절, 당시 다들 그렇듯 학교에 다녀오면 소나 염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는 게 일이었다.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풀이 많은 곳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혼자 있어야 했고 풀 먹이는 시간이 짧은 것도 아니었다. 바다만큼 큰 소의 배는 도대체 채워질 줄 몰랐다. 심심해서 아는 노래를 다 불러도 간에 기별도 안 갔다는 듯 여전히 풀을 뜯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 이들이 고집을 피울 때가 문제였다. 보통은 순한데 가끔 자기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무지막지하게 갈 때가 있다. 초등학생인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덩치들인지라 질질 끌려갈 수밖에. 해는 어둑해지고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더 먹겠다고 그러면 정말이지 애가 탔다. 그때마다 사투를 하다시피 해서 집에 오면 기진맥진. 이러니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더 먹고 싶었던지 우람한 소가 나를 끌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소를 막아선 다음, 풀을 먹지 못하도록 손으로 방해했다. 순한 소는 내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리질했다. ‘이러다 돌아서겠지.’ 이런 생각으로 계속 못 먹게 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내 손을 피해 풀을 먹으려던 소가 그 손을 꽉 물었다.

놀란 나는 비명을 질렀고 소도 놀라 ‘동작 그만’인 상태가 됐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두 눈만 끔벅거리고 있는 소 앞에서 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놀란 마음도 진정되지 않아 정말 혼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어찌어찌해서 집에 와 울먹거리며 사실을 고하자 부모님과 함께 계시던 이웃 어른들이 파안대소하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중 한 분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지금까지 소한테 물려 죽은 사람은 없어.”

내가 믿지 않자 소의 입을 벌려 입속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때 알았다. 소에게는 윗니가 없다는 걸. 아랫니만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게 신기해 울먹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먹어요?” 현명한 답이 돌아왔다. “궁금해? 내일 데리고 가서 자세히 봐.”

실제로 내 가슴만 놀랐지 내 손은 아무 일도 없었고, 그래서 한동안 소가 풀 먹는 걸 열심히 봤다.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이 휙휙 지나갔다. 소들은 혀로 풀을 쓱 감아 위 잇몸에 댄 다음, 아래 앞니를 갖다 대는 것과 동시에 턱을 잡아당겨 툭 잘랐다.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의 위 앞니가 없다는 걸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있는 게 훨씬 좋을 텐데 왜 없을까? 먼 옛날에는 있었는데 무기가 필요해 뿔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과적인 무기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맞는 말이다. 화난다고 ‘뿔’만 낼 게 아니라 진짜 뿔 같은 걸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요한 걸 물리고서도 몰랐다니.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소#염소#앞니#무기#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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