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도 민주주의’ 조장하는 포털 댓글, 사회적 논의해야[동아광장/한규섭]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1-08-10 03:00수정 2021-08-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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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마다 여론조작 대상 된 온라인 댓글
비용 대비 보상 높아 조작 유혹 커져
포털 사용자 0.05%가 댓글의 20% 차지
대표성 낮고 민심 왜곡해 보여줄 우려 높아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지사직을 상실했다. 법률적으로는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징역 2년형만 선고됐다. 하지만 대선후보의 정무특보 역할을 했던 최측근이 댓글 조작에 관여한 것을 일반적인 ‘업무방해죄’와 동일시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했던 문재인 캠프의 인사가 다음 대선에서는 오히려 댓글 조작에 관여한 것이다. 즉, 지난 10년간 대통령 선거 때마다 온라인 댓글은 여론조작의 대상이 됐다. 사람이 아니라 매크로로 바뀐 기술적 ‘진화’ 정도가 차이랄까.

결국 선거 캠프 관계자들 시각에서는 ‘보상’은 잠재적 대선 승리며 ‘비용’은 업무방해죄에 불과하다 보니 댓글 조작 유혹에 빠지기 쉬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내년 대선도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특히 포털이 뉴스 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포털 뉴스 댓글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포털 댓글난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자. 우선 ‘공론장’의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 기사에 대해 유권자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교환하는 것은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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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댓글난은 과연 공론장일까. 필자 연구팀은 2008년부터 작년 9월까지 모 포털에서 ‘과학·IT’ ‘경제’ ‘사회’ ‘생활·문화’ ‘세계’ ‘정치’ 등 6개 섹션별로 매일 가장 많이 읽힌 기사 30개씩을 골라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 2억6000만 건을 분석했다.

우선 2017년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 소위 ‘클린봇’이 삭제한 댓글을 분석해 보았다. 2020년 9월 한 달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정치 기사 900여 건에 달린 총 182만1125건의 댓글 중 21만2525건(12%)이 클린봇에 의해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10개 중 1개 이상의 댓글이 욕설 등으로 삭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정치 기사 댓글난은 공론장이라기보다는 적개심 배설 창구에 가까워 보인다. 노골적인 비방을 포함하는 댓글로 범위를 확대한다면 공론장 형성에 도움이 되는 댓글이 몇 퍼센트나 될까.

일각에서는 포털 댓글난을 유권자들의 민심 파악 지표로 간주한다. 과연 댓글이 민심을 대표할 수 있을까. 2008년 이후 가장 많이 읽은 기사에 댓글을 한 번이라도 달았던 사용자 중 상위 1%가 매년 전체 댓글의 20% 가까이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포털 전체 사용자를 3000만 명 정도로 가정한다면 전체 사용자의 약 0.05%가 20%의 댓글을 작성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 유권자 전체를 기준으로 한다면 불균형은 더 심해진다. 결론적으로 정치영역에서 댓글의 대표성은 매우 낮고 오히려 민심을 왜곡하여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좌표 찍었다”는 말이 자주 쓰인다.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몰려다니며 포털 기사 댓글난을 도배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필자 연구팀의 분석에서는 작년 한 해 가장 많이 읽힌 정치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같은 기사에 1분 이내에 댓글을 함께 작성한 빈도가 6회 이상인 사람이 13만 쌍에 달했다. 계속해서 같은 기사에 댓글을 작성하는 사용자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2010년의 890쌍에서 무려 150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몰려다니기’ 현상이 지속적으로 심화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물론이고 연예인을 비롯한 일반인도 소위 ‘좌표’가 찍히면 여지없이 온라인 린치의 표적이 된다. ‘온라인 공론장’과 ‘표현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한때는 권위주의 정부를 오래 거쳐야 했던 우리를 설레게 했던 온라인 공론장이었을지도 모를 포털 댓글난이 소위 ‘폭도 민주주의(mob democracy)’ 현상을 조장하는 괴물로 진화한 것은 아닐까. 대선을 7개월 앞둔 시점에서 포털 댓글난에 대해 진영을 초월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선거가 더 가까워지면 양 진영 모두 유불리를 따지게 되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포털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감옥에 가는 캠프 관계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폭도 민주주의#포털 댓글#사회적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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