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꾼 25년 전 헛발질[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입력 2021-07-23 03:00수정 2021-07-23 03:0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20일은 내가 한국에 온 지 25년째 되는 날이었다. 믿기 어렵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 그 사이 5년 정도 해외에 체류했으니 20년간 한국에 머문 셈이다. 원래 계획은 한국에서 영어를 1년 정도 가르친 뒤 독일어 전공을 살려 독일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1997년 당시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코레타(KORETTA·차후 EPIK로 바뀌었다)라는 초빙 원어민 교사 프로그램에 지원해 한국에 왔다. 당시 담당 부서에서 관련 안내 책자를 보내주는 것을 잊은 탓에 나는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입국했다. 그 당시 내가 공항에 도착하면 누군가 내 이름을 쓴 안내판을 들고 마중 나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공항의 어느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다. 무더운 7월의 토요일 저녁, 공항 입국장을 몇 바퀴 돌고 나서야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나를 기다리던 한국인 직원은 내 이름이 아닌, 프로그램 이름을 들고 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안내 책자에 쓰여 있었다고 했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계속 내 이름만 찾았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당시 해당 프로그램의 이름도 익숙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날은 점점 저물고 있었다. 그때는 공항이 24시간 운영되지 않던 때라 빨리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설상가상, 당시 트렁크 하나만 허용된 탓에 나는 가방에 다 싸지 못한 옷을 몇 겹으로 입고 비행기에 탔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주요기사
당시 나는 한국말 두세 마디밖에 몰랐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코레타 사무실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토요일 저녁이라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호주에서 우연히 알게된 서울외국인학교 선생님의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절실한 희망을 품고 공항 매점에서 지폐를 잔돈으로 바꾼 후 공중전화를 찾았다. 다행히도 누가 받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는 여름방학이라 미국에 갔다고 했다.

그는 다른 미국인 영어교사 J에게 교원 사택을 맡긴 모양이었다. 당시 너무나 갈급했던 나는 J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J는 바로 “거기 기다려. 데리러 갈게”라고 했다. 그로부터 1시간 뒤 J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왔고, 나를 서울외국인학교 사택에 데려다 줬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그날 밤 어디서 묵고, 그 뒤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다음 날인 일요일, J와 그의 친구인 또 다른 영어교사 B가 나를 데리고 서울 신촌과 광화문 구경을 시켜 줬다. J와 B는 한국에 대해 많은 조언도 해줬다. 한국어 배우기의 중요성에 대해, 지하철에서 한국인들에게 영어 대화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에 대해, 그리고 된장찌개를 주문하는 방법까지. 나는 여전히 J와 B가 무척 고맙다.

마침내 월요일 아침에 코레타 사무실로 전화할 수 있었다. 담당자는 김포공항에 돌아가 어느 여행사 직원을 찾으라고 했다. 다시 공항에 가서 그 직원을 만났다. 그는 나를 위해 밴과 운전사를 주선해줬고, 몇 시간 후 나는 원어민 교사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충북 청주의 한국교원대에 도착했다.

당시 코레타 측은 내가 김포공항에서 담당 직원을 왜 만나지 못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심지어 내가 이용한 밴과 운전사 비용 몇십만 원을 코레타에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빚이 생기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경에 빠진 나를 구해준 친절한 사람들과 서울 구경을 한 뒤 한국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들이 해줬던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한국살이에 기대를 품게 했다. 이들과의 짧은 서울투어가 없었다면 나는 독일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만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공항에서 모든 일이 제대로 진행됐다면 어찌 됐을지 궁금하다. 그 실수를 시작으로 많은 생각이 바뀌게 됐고, 이후 이곳에서 여러 관계를 맺고 결국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인생은 결코 모를 일이다. 혹시 평행세계에서 온 다른 나를 만난다면 붙잡고 묻고 싶다. 그날의 헛발질이 내 인생을 잘 바꾼 거냐고.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한국에 온 지 25년째#헛발질#인생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