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종석]10만 번의 활시위, 10만 번의 퍼팅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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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노력 끝 지킨 세계정상
‘바늘귀 대표팀’ 공정성도 한몫

김종석 스포츠부장
김종석 스포츠부장
한국 양궁은 신궁에 비유된다. 양궁이 올림픽에 처음 채택된 1984 LA 대회부터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전체 34개의 금메달 가운데 23개(은 9개, 동 7개)를 수집했다. 역대 여름올림픽 최대 금맥이다. 리우 올림픽에서는 최초로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린 4개 종목을 석권했다. 23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에서는 남녀 혼성 종목이 신설돼 5개 싹쓸이 도전을 꿈꾼다. 특히 여자 양궁은 17개 금메달 가운데 16개를 독식했다. 역대 여자 단체전 우승은 28년 동안 한국뿐이다.

한국 여자 골프는 2016 올림픽에서 박인비(33)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골프가 1900년 파리 대회 이후 116년 만에 부활한 가운데 올림픽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감격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 여자 골프에도 국가별 최대 인원 4명이 출전한다. 박인비 김세영(28)은 2회 연속 나서며 26세 동갑내기 고진영 김효주가 가세한다.

양궁과 골프는 바람 기온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강풍이 불면 오조준한다. 헤드업을 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두 종목은 대표적인 멘털 스포츠로 선수들은 외부 요인을 컨트롤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두 종목은 편법이나 특혜 시비 한 번 없이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치열한 선발 과정을 거쳤다. 양궁은 6개월 동안 5차례 대표선발전을 치렀다. 경쟁률은 30 대 1이 넘는다. 리우 2관왕 장혜진은 3차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대표로 뽑힌 선수들이 선발전에서 쏜 화살만도 1인당 2900발가량 된다.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오진혁은 불혹의 나이로 9년 만에 올림픽 사대에 서게 됐다. 매일 300발씩 1년에 10만 발을 쐈다는 그의 오른쪽 어깨 회전근은 4개 가운데 1개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도 올림픽을 향한 희망으로 버텼다.

골프는 3년간 대회 성적에 따른 랭킹에 따라 60명만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이 기간 박인비는 43개 대회에서 약 1400km를 걸었다. LPGA투어에 따르면 대회 때 퍼팅 수만 5000개 가까이 된다. 연습을 합치면 10만 번 넘게 퍼팅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선천적으로 손목이 약해 팔굽혀펴기도 못 하는 박인비는 코킹(손목 꺾음)이 별로 없는 독특한 스윙을 갖게 됐다. 그래도 그는 올림픽 타이틀 방어의 기회를 잡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독하게 훈련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집에서 근력 훈련에 매달렸고, 20대 때도 거의 없던 5개 대회 연속 출전을 했다. 여자 골프는 중고교 시절 아마추어 국가대표가 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 김효주는 고교 시절 프로대회 우승까지 했지만 아시아경기 대표 선발전에서는 미역국을 먹은 뒤 큰 상처를 받았다.

한국 대표 되기가 메달 따기보다 힘들다는 말도 있다. 도쿄 올림픽은 개막이 1년 연기되면서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장기 레이스에서 늘 긴장하며 실력을 쌓아야 했기에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적 부담이 컸으리라. 아시아 출신 올림픽 출전 선수 17명 가운데 최고령인 박인비는 “5년 전 올림픽을 마치고 계속 좋은 기량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든다. 한국 대표팀은 선발되기 어려운 자리인 만큼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쿄 올림픽이 이제 18일 남았다. 공정한 경쟁을 거쳐 달게 된 태극마크가 이미 훈장처럼 보인다. 그들의 열정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익숙한 세상을 향해서도 큰 울림을 줄 것 같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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