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두파혈류’ 미-중 신냉전에서 한국경제가 살아남는 길

천광암 논설실장 입력 2021-07-05 03:00수정 2021-07-0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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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共 100년, 美에 경고장 던진 시진핑
“우릴 괴롭히면 머리 깨져 피 흘릴 것”
中에 무시 안 당할 韓 안전판은 반도체뿐
공급망 격변… 이재용 사면 실기 말아야
천광암 논설실장
2019년 말부터 최근까지 중국 누리꾼 사이에서 ‘입관학(入關學)’이 유행했다. ‘관(關)’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있는 산해관을 가리킨다. 만주에서 건국한 청나라가 산해관을 깨고 들어가 명나라를 무너뜨린 역사에서 가져온 비유다. 여기에는 미국이 중국을 ‘변방’ 다루듯 하는 데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중국이 제대로 대접 받으려면, 청나라가 산해관을 돌파했듯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입관학은 중국 정부의 입장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한 연설을 들어보면, 이 둘은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 주석은 ‘두파혈류(頭破血流·머리가 깨져 피가 흐른다는 뜻)’라는 표현으로 더 이상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계 2위인 중국의 경제력과 첨단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현재 중국이 최대교역국인 나라는 100개국에 이른다. 57개국인 미국을 압도한다. 중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70%를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2028년경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 질적인 면에서도 별로 밀리지 않는다. 중국은 첨단 산업에서도 미국의 맞수로 올라섰다. 이는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 2000∼2019년 10개 하이테크 산업의 특허를 분석한 결과에 잘 나타난다. 10개 분야 중 인공지능, 재생의료, 자율주행, 블록체인, 사이버보안, 가상현실, 전도성 고분자, 리튬이온전지 등 9개 분야의 특허 출원에서 중국은 1위를 휩쓸었다. 양자컴퓨터만 미국에 이어 2위였다.

그러나 중국에는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반도체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쏟아부은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중국 정부는 2014년 기금 170조 원을 조성해 기업을 지원했고, 미국 일본 등에서 거액의 돈 보따리를 안겨가며 전문경영인과 기술자들을 닥치는 대로 스카우트했다. 그런데도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자급률이 낮은 탓에 지난 한 해 동안에만 반도체 수입에 430조 원을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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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미국의 수출규제까지 받게 된 중국이 단기간에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는 것이 반도체 산업의 역사다. 삼성전자와 TSMC도 긴 무명 시절과 시련기를 거쳤다. 현재 중국에는 5만 개의 반도체 기업이 있다. 이 중에서 삼성전자나 TSMC 같은 기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시 주석도 최근 최측근인 류허(劉鶴) 국무원 부총리를 반도체 사령탑으로 낙점해 ‘반도체 굴기’에 가속도를 내려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과거 시 주석이 회담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이를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았다. 이런 속마음을 가진 중국이 반도체 자립의 숙원을 이뤘을 때, 한국경제에 닥칠 시련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과거 사드 배치를 빌미로 롯데를 사실상 중국시장에서 쫓아내고 한한령(限韓令)으로 한류를 말살한 경제적 횡포가 수시로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대국굴기’에 한국경제가 머리가 깨지는 수난을 겪지 않으려면 유일한 지렛대인 반도체 분야의 우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 지금 삼성전자가 메모리 1위라고 해서 안심해선 안 된다.

‘반도체 제국’ 인텔의 전설적 최고경영자(CEO) 앤드루 그로브는 “사업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파멸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메모리 시장을 만들다시피 한 인텔조차도 한창 잘나가던 도중에 일본 기업들의 도전을 만나 메모리 사업을 접었다. 반도체처럼 변화가 극심한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미세한 변화의 조짐에도 민감하게 대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반도체 사업의 이 같은 속성 때문에 경제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조속한 사면을 여러 차례 건의해 왔다. 더구나 지금 반도체 시장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미세한 조짐 정도가 아니다. 미국 중국 대만 일본 등이 공급망의 완전한 ‘새판 짜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특히 미중 간의 신냉전은 반도체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경제 질서를 통째로 바꿔 놓을 공산이 크다. 우리에게는 한순간의 실기가 파멸로도 직결될 수 있다.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좌우할,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이 늦어져선 안 되는 이유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입관학#두파혈류#아킬레스건#반도체#이재용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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