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더욱 감사하자[임용한의 전쟁사]〈16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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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년 홍건적이 고려를 침공했다. 갑작스러운 침공에 고려군은 북방에서 홍건적을 저지하지 못했다. 홍건적이 황해도에 도착했다. 고려군은 훗날 정방산성이 들어서는 절령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펼쳤다. 여기가 뚫리면 수도 개경도 함락이다.

11월 16일 밤, 홍건적 1만 명이 방어선에 접근했다. 고려군은 이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야간에 철기 5000명이 급하게 세운 나무 울타리로 돌격해 목책을 돌파했다. 고려군과 이곳으로 피란 왔던 주민들이 몰살했다. 전사한 고려군의 병력과 주민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참상이 지독했던 모양이고, 홍건적이 시신을 버려두고 남하하는 바람에 들판에 백골이 나뒹굴었다고 한다.

나중에 정부는 이곳에 여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여단은 원래 전염병 같은 액운을 막기 위해 세우는 제단이다. 절령에 세운 여단은 조선시대까지 있었는데, 전사한 장병들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의미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전염병 예방 의미가 더 강했다.

병자호란 중에 벌어진 쌍령전투는 조선군 3만 명이 청군 300명에게 패배했다는 잘못된 통설 때문에 오랫동안 비난 받았다. 그 현장에는 지금 정충묘라는 작은 사당이 서 있다. 놀랍기도 하지만, 반갑고 고맙기도 하다. 어느 사회나 그렇지만 패전은 생각하기 싫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원인 분석은 소홀히 한다. 그것도 잘못이지만,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장병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장병들이 실패자는 아니다. 그들을 기리고, 감사하고, 패전의 원인을 정확히 되짚어 그런 잘못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는 것과 실천은 다르다. 개개인도 일상에서 수없이 결심하지만 거의 작심삼일이다. 사람은 무언가 큰 실패를 경험해야 진심으로 반성하고 고친다. 국가와 사회의 반성과 개선은 더 힘들다. 그래서 전쟁사에서도 이런 비극이 반복된다. 패전을 인정하고 그 땅에 누운 병사들에게 두 배로 더 감사해야 한다.

임용한 역사학자
#홍건적#고려#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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