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영]전문직 뒤흔든 플랫폼 갈등, 어설픈 봉합으론 안 된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06-05 03:00수정 2021-06-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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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1부 차장
택시나 배달 업종 등에서 나타나던 기존 업계와 플랫폼 비즈니스 사이의 갈등이 최근엔 변호사 의사 등 이른바 ‘사자 직업’으로까지 옮겨붙었다. 전문직발(發) ‘타다 사태’로 불릴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온라인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서로 전면전을 불사하고 있다. 지난달 변협은 ‘변호사업무광고규정’을 바꿔 8월부터 로톡 등 법률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들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로톡이 저가 수임 경쟁을 부추기고, 이에 따라 법률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면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달 31일 로톡은 “직업을 자유롭게 수행할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으로 맞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플랫폼과 전문직의 갈등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와 ‘바비톡’이 환자를 불법 알선해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날을 세운다. 연말정산 미환급금을 찾아주는 서비스로 유명한 ‘삼쩜삼’은 세무사들과, 다세대·연립주택의 담보 가치를 자동 평가해주는 ‘빅밸류’는 감정평가사들과 설전을 벌였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과 공인중개사, 전문의약품 배송 플랫폼과 약사들의 공방도 진행형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짧은 지면 속에 따지기는 어렵지만 양쪽의 주장 모두 일리는 있다. 플랫폼들은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통해 소비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전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고 강조한다. 전문직 단체들은 편리함과 비용만 따지다 숙련된 전문자격인의 통제를 벗어나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되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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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이 같은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현재 전문직의 고유 영역이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무당국이 조세업무 자동화에 나서자 세무사가, 대법원이 ‘미래등기’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자 법무사들이 떨고 있다.

전통 영역과 신산업의 충돌에 대해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중재에 나서야 한다. 다만 양쪽의 이해관계를 적당히 봉합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자칫 우스꽝스러운 해법이 나올 수도 있다.

2019년 9월 취임한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일본 과학기술·IT 담당상은 “행정 절차의 디지털화와 일본의 전통 도장 문화의 양립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이에 호응하듯 그해 일본에선 전통과 혁신을 결합한 ‘획기적’인 물건이 나왔다. 자동으로 도장을 찍어주는 로봇이다. 개발 회사는 “번거로운 날인 작업을 효율화해 사실상 서류를 ‘전자화’한 것과 같다”고 했다. 황당한 일을 진지하게 하면서 ‘혁신’이라 주장하는 꼴이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현행법의 틀에서 합법이냐 위법이냐 따져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일차원적 접근에 그쳐선 안 된다. 불편한 경험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틈새 서비스는 끊임없이 나올 텐데 그때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질 순 없다. 필요하면 기존의 법체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고민을 해야 한다. 신산업의 발전을 촉진하면서도 소비자 피해의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는 명확한 비전이 필요하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전문직#플랫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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