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 국군포로 김성태, 95세 6·25 美용사 퍼킷 [광화문에서/윤완준]

윤완준 정치부 차장 입력 2021-05-31 03:00수정 2021-05-3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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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정치부 차장
열일곱의 김성태는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1948년 입대했다. 국군이 창설된 해였다. 경기 동두천의 7사단 1연대에 배치됐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방에서 고립된 채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다 포로가 됐다. 좁은 감방에서 굶주림과 사투를 벌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직전인 그달 18일. 강원도 바다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휴전협정 이틀 전인 25일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스물두 살의 그는 교도소에서 두들겨 맞았다. 죄수들이 죽어 나가는 걸 봤다. 1954년 평양 복구 건설에 동원됐을 때 탈출하려다 실패했다.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1966년 함경북도 온성의 추원탄광으로 끌려갔다. 서른다섯 청년은 그로부터 27년간 시커먼 석탄가루를 삼켜 가며 버텼다. 일흔이 다 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왔다.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에 잠시 희망을 가졌다. “국군포로 생존자를 돌려보내 달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다음 해 아들과 함께 몰래 중국으로 갔다. 50년의 탈출 시도 끝에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올해 아흔이 된 김 씨는 24일 다른 국군포로 2명과 함께 정부에 북한의 송환 거부와 강제노역, 가혹행위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이틀 뒤였다. 28일 그와 통화했다. “역시나 우리 얘기는 없더군요….”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엔 일본 납북자 얘기가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즉각 해결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짧은 표현이었지만 이 문구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할 때 납북자 문제를 반드시 꺼낼 겁니다.” 국군포로들의 진상 규명 요구를 돕고 있는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방미에서 6·25전쟁 때 피를 같이 흘린 동맹을 강조했으니 립서비스라도 문 대통령이 국군포로 얘기를 꺼냈다면 어땠을까”라고 했다.

올해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 처음으로 국군포로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포함됐다. 2011년 미 하원은 처음으로 국군포로 송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다. 문 대통령은 방미 때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났다. 하원이 10년 전 국군포로 송환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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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발표한 국군포로 수는 8만2000명이다. 북한이 휴전협정으로 돌려보낸 국군포로는 8300명뿐이다. 현재까지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는 80명. 대부분 진폐증, 폐암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18명이 생존해 있다. 김 씨가 생존자 중 가장 ‘젊다’. 최고령자는 99세 이원삼 씨다.

한미 정상회담 직전 문 대통령은 6·25전쟁 참전용사 랠프 퍼킷 주니어 예비역 대령의 명예훈장 수여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국군포로들과 나이가 비슷한 95세의 이 용사 옆에 무릎을 꿇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이를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국군포로들과도 그런 장면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걸까.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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