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튜브]현대인의 공허를 채워주는 말러의 교향악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4-13 03:00수정 2021-04-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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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교향곡은 그의 생전 ‘이해할 수 없으며 소음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오늘날 세계 콘서트장을 정복한 인기 레퍼토리로 정착했다. 말러 시대 신문에 실린 그의 캐리커처. 동아일보DB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클래식 음악은 늘 꽉 짜인 레퍼토리를 계속해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오늘날의 창작음악을 논외로 하더라도 그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죽은 작곡가 사회’에 대한 후대의 인정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놓고 봐도 최소 두 가지 경향이 뚜렷하다. 첫째, ‘음악의 아버지 바흐’라는 관념처럼 바로크 후기 음악을 감상의 한계선으로 놓던 데서 벗어나 바로크 초기 또는 르네상스나 중세 음악까지도 일반 음악애호가들의 감상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둘째, 1960년대 이후 대대적인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붐이 일어났다. “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라고 말했던 말러 생전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왜 현대인은 말러의 교향곡에 열광할까. 말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답이 있다. 음악학자 노먼 러브렉트는 “말러의 변화무쌍함이 그의 작품을 늘 처음 연주하거나 듣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지휘자 존 모체리는 “말러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후배들이 할리우드 영화음악계에 진출했기 때문에 현대인이 말러의 음악 스타일에 익숙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분석들에 나름대로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현대인과 공허’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싶다.

20세기 후반은 서구가 인류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풍요를 최초로 맞이한 시대였다. 한편으로 이런 풍요의 기반 위에 거대한 정신적 공허가 서구를 휩쓸었다. 베이비붐 속에서 냉전이 극한으로 치달았고, 인간은 우주에 도전했으며, ‘데미안’으로 대표되는 헤르만 헤세와 ‘생의 한가운데’를 쓴 루이제 린저 열풍, 히피 세대의 등장, 참여적이면서도 쓸쓸한 반전가요의 물결 등이 시대를 휩쓸었다. 앞선 세대는 전쟁을 치르며 세상의 물결에 휩쓸렸지만, 젊은 세대는 이제 빈틈없이 짜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하잘것없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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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는 이런 현대인의 공허가 만연한 시기에 세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세상을 새롭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어주며, 삶과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기에 적합했다. 말러가 바라본 세계는 비극성과 임무를 부여받은 거대한 드라마로서의 세계이며, 인간의 삶이란 이런 세계 위에서 분명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받는 삶이었다. 20세기 후반의 인류는 그렇게 말러가 부여한 세상의 의미에 열광했다.

생전의 말러 자신도 그 누구보다 세계와 삶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그에게 있어서 세계는 풀어내야 할 의미로 가득한 곳이었고, 개인은 그 의미를 풀어야 하는 과제와 숙명에 붙들린 존재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메모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그 ‘숙명 의식’을 증명한다. 어린 말러에게 어른들이 장래 희망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순교자요!”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몸과 정신을 불태웠다.

삶의 숙명을 받아들인 말러의 음악엔 늘 극단이 존재한다. 교향곡 5번의 2악장에선 지옥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 황폐한 비명이 들리다가 갑자기 트럼펫이 구원의 찬가 같은 밝은 악구를 연주한다. 교향곡 4번은 민요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따온 천국의 순수한 일상을 노래하지만 같은 민요집에서 딴 가곡 ‘지상의 삶’에는 배고픔을 호소하며 죽어가는 아이가 등장한다. 교향곡 6번 ‘비극적’ 느린 악장도 산간 초원지대의 휴가처럼 안온한 멜로디가 흐르다가 갑자기 경악의 외침으로 빠져든다. 1960년대 말러 붐을 이끈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세상에 대해 이중 시각(dual vision)을 제공하는 말러의 음악은 20세기의 복잡성과 상응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올해 서울 예술의전당 ‘한화와 함께하는 교향악축제’에선 13일 제임스 저드 지휘 대전시립교향악단이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을, 14일엔 최희준 지휘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천국의 일상’을 노래하는 교향곡 4번을 소프라노 홍혜란 협연으로 연주한다. 말러가 묘사한 천국과, 그가 묘사한 비극을 하루 사이 만날 수 있다. 두 교향곡에 나오는 ‘천국’과 ‘비극’도 말러가 묘사한 가장 극단적인 세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세계 속에서도 ‘절충적’인 천국과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말러#교향악#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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