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헌재]SK 와이번스의 마지막 팬클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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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한국 프로야구에는 라이벌이 많다. LG와 두산은 ‘잠실 라이벌’, 롯데(삼성)와 KIA는 ‘영호남 라이벌’이다. 그렇다면 실력으로 볼 때 역대 최고의 라이벌은 어디일까. 개인적으로는 SK와 두산을 꼽고 싶다.

2000년대 말 김성근 감독(현 소프트뱅크 코치)의 SK와 김경문 감독(현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이 이끈 두산은 만나기만 하면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SK가 ‘스몰 볼’이라면 두산은 ‘빅 볼’이었다. SK가 세밀했다면 두산은 호쾌했다. 두 팀의 대결에서는 언제나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 타자의 스윙 한 번에 그렇게 집중해서 야구를 본 적은 많지 않다.

두 팀은 각각 ‘왕조’를 세웠다. SK는 한국시리즈에서 4차례 우승했고, 두산은 6번 정상에 올랐다. 양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3차례(2007∼2008년, 2018년) 만났는데 승자는 모두 SK였다.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이겨보지 못한 팀이 SK다. SK는 2009년 8월 25일 두산전부터 이듬해 4월 2일 한화전까지 22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아시아를 통틀어 단일 구단 최다 연승 기록이다.

SK 와이번스의 시작은 미약했다. SK는 2000년 3월 31일 재정난으로 해체된 쌍방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창단했다. 연고지는 ‘삼청태현’이 모두 포기했던 인천이었다. 삼청태현은 인천을 연고지로 했으나 흑역사만 남긴 채 사라진 삼미, 청보, 태평양, 현대의 앞 글자를 딴 조어다.

창단 초기 SK는 전력도 약했고, 팬들의 마음도 얻지 못했다. 창단 첫해 안방이던 숭의야구장을 찾은 관중은 총 8만4563명(경기당 1281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SK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명문 구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02년 당시로는 초현대식 구장이던 문학야구장으로 안방을 옮기면서 팬 친화적인 야구장을 만들려 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인 ‘스포테인먼트’를 모토로 팬들에게 다가갔다. SK가 시작한 ‘스포테인먼트’는 KBO리그 전체로 뻗어나갔다.

모기업의 화끈한 투자로 팀도 강해졌다. 박경완, 김재현 같은 스타 선수들을 FA로 영입했고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최정 등을 전국구 스타로 키워냈다. SK는 2012년 106만9929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2018년에 다시 한번 100만 관중(103만7211명)을 돌파했다. 인천은 한국에서 야구가 가장 먼저 도입됐지만 변방 취급을 받는 도시였다. SK는 소외돼 있던 인천 팬들의 자랑이자 자긍심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SK는 전격적으로 신세계그룹에 인수되면서 21년간의 길고도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 SK의 자리는 SSG 랜더스가 물려받았다. SK 유니폼을 반납하던 3월 5일. 선수들은 팬들이 수천, 수만 번 불러줬던 대표 응원가 ‘연안부두’를 합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예전엔 몰랐다. 연안부두가 이토록 슬픈 노래였는지를.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오는 사람 가는 사람/마음마다 설레게 하나/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말해다오 말해다오/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ㅠ.ㅠ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sk 와이번스#마지막#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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