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규제” 권한 다툼에 골병드는 온라인 플랫폼[광화문에서/김재영]

김재영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02-22 03:00수정 2021-0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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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1부 차장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도 않고 수술대에 올랐는데 의사들이 서로 자기가 수술하겠다고 하니 불안합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이달 초 한 토론회에서 정부와 국회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갈등에 대해 이같이 우려했다. 공정거래위원회(국회 정무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규제 권한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공정위는 ‘플랫폼 갑질’을 막겠다며 지난해 9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 공정화법’(온플법)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정보통신기술(ICT) 규제는 우리 전문영역”이라며 반발한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의원 입법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보호법’을 발의하며 맞섰다.

공정위 측은 “오랜 기간 준비했는데 방통위가 뒤늦게 숟가락을 얹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9일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공정위안이 정부에서 마련한 단일하고 합의된 안”이라고 강조했다. 16일 정무위 여당 의원들도 “정무위에서 공정위안으로 처리하기로 당정협의를 마쳤다”고 선언했다. 이에 과방위 의원들과 방통위가 반발하자 19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가 긴급 조율에 나섰지만 결론을 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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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일을 하겠다고 싸우는 흔치 않은 미담에는 이유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플랫폼이 비약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61조 원으로 10년 전(25조 원)의 6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새롭게 열린 유망 시장에 대한 규제 권한을 선점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관할권 다툼에 집중하면 정작 규제 내용에 대한 검토는 부실해진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유형마다 상황이 다른데 정부가 만든 표준계약서를 어떻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플랫폼에 노출되는 순서, 형태, 기준 등을 공개하라는 조항에 대해선 영업비밀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매출액 100억 원, 거래액 1000억 원 이상’이 규제 대상인데 왜 그렇게 정했는지도 모호하다. 단기간 매출이 급등한 소규모 스타트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부처에서는 나중에 시행령이나 고시 등으로 구체적으로 보완하겠다고 하는데 기업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피해를 볼 수 있는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일단 규제부터 꺼내는 관성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ICT 법안 815건 중 규제법안이 73%에 이른다. 충분한 검토를 통해 혁신을 저해하지 않고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수년간의 토론과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통해 법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부처 간 적당한 타협으로 짜깁기해 서둘러 법을 통과시키는 방향은 곤란하다. 이번 기회에 플랫폼 규제의 필요성과 적용 범위, 방식 등에 대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업계의 우려를 충분히 듣고 구체적인 실태조사도 진행해야 한다. 무턱대고 메스부터 들이대기 전에 “MRI부터 찍어 보자”는 환자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규제#권한#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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