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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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영화 ‘소울’

영화 ‘소울’은 주인공 조 가드너와 삶의 불꽃을 찾는 영혼들의 여정을 다뤘다.
영화 ‘소울’은 주인공 조 가드너와 삶의 불꽃을 찾는 영혼들의 여정을 다뤘다.
※이 글에는 영화 ‘소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학 시절에 지나칠 정도로 치열하게 공부하는 후배를 만난 적이 있다. 왜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좀 더 근사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오, 그런가. 이 대답은 오래 뇌리에 남았다. 공부를 잘할수록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인간이 짝짓기에 골몰하는 생물의 일종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간명한 대답이었다.

세월이 지나 유부남이 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니 그토록 멋진 배우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는데, 왜 여전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어라, 그는 머뭇거릴 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그 후배가 불의의 사고라도 당해서 결혼하기 전에 죽었다면 그 치열한 삶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삶은 너무 위태롭지 않은가. 사실 우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목표 달성 전에 갑자기 죽었다고 그 삶이 싹 무의미해져 버리다니. 그래도 되는 것일까?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은 바로 이 질문을 다룬다.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미국 뉴욕에서 파트타임 음악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친 덕분일까. 마침내 정규직 교사 제안을 받는다.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 남편과 사는 데 지친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이 소식을 기뻐한다. 그러나 조의 진짜 꿈은 다른 곳에 있다. 그의 삶의 불꽃은, 즉 소울(soul)은 바로 재즈에 있다. 갈채를 받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멋진 공연을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조는 왜 재즈를 그토록 원할까?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면 조는 불행한 것일까? 영화 ‘소울’은 인생에 대한 질문에 주인공과 관객들이 답하는 과정이다.
조는 왜 재즈를 그토록 원할까?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면 조는 불행한 것일까? 영화 ‘소울’은 인생에 대한 질문에 주인공과 관객들이 답하는 과정이다.
조는 좀처럼 자신의 소울을 실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어느 날 옛 제자의 주선으로 평소 흠모하던 도로시아 윌리엄스 사중주단의 피아니스트 오디션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합격한다! 마침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고 삶이 의미로 충만하게 되는 날이 온 것이다. 이런.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 날뛰며 집에 돌아오다가 조는 그만 하수구에 빠져 죽고 만다. 저승에 간 조는 목표 달성 직전에 물거품이 되고 만 자기 인생을 납득할 수 없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갱생(更生)을 추구한다. 천신만고 끝에 조는 이승으로 돌아와 도로시아 윌리엄스 사중주단 연주에 참여하게 된다.

이승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조의 갱생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삶이란 미리 정해 놓은 목표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소울은 찾아내야만 할 기성의 불꽃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유명한 연주자가 되는 데 삶의 의미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갱생이 시작되었다. 이 삶은 그가 전부터 살고 싶어 했던 그 삶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에 기초한 새로운 삶이라는 점에서 진짜 갱생이다.

그 새로운 철학이란 바로 소울 재즈다. 재즈는 즉흥이다. 재즈의 핵심은 악보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에 있다.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 따위는 임시로 칠해 둔 눈금에 불과하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선생이 되고 나서 공부를 지나칠 정도로 치열하게 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왜 그토록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공부하는 순간이 좋아서요. 오, 그런가. 이 대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영광된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인간은 우연의 동물이며, 순간을 살다가 가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는 간명한 대답이었다. 삶을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대답이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소울#영화#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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