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우울증 발견-대처법
은퇴-질환-고립 등 원인도 다양
우울한 기분-즐거움 상실 증상… 두통-통증 등 신체현상 동반도
약물-정신치료 병행땐 호전 가능… 개인 아닌 ‘공중보건 과제’로 부상
노년기 우울증은 가장 흔하면서도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말수가 줄고 활동을 회피하거나 식사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변화가 보이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동아일보 DB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의지의 문제’라거나 ‘낫지 않는 병’이라는 편견도 상당 부분 줄었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년층에서 처음 나타나는 정신질환은 여전히 관심 밖에 놓여 있다. 증상이 상당히 심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노년기 우울증은 가장 흔하면서도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일반 노인 인구에서 주요우울장애 유병률은 1∼4%, 경미한 우울증은 4∼13%로 보고된다.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에서는 이 비율이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진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으로 전체 평균보다 높다. 노년기 우울증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 과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실·질환·고립… 복합적 원인
노년기 우울증은 여러 요인이 겹쳐 나타난다. 은퇴와 자녀의 독립, 배우자나 친구의 사망 등 인생 주기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반복되는 상실은 무력감과 무가치감을 키운다.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면서 변화를 알아차려 줄 주변 사람도 줄어든다.
신체 질환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같은 만성질환이 동반되면 활동량이 줄고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 문제는 우울 증상이 신체 증상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식욕 저하나 피로감을 단순 노화나 질환의 결과로 여기기 쉽다.
인지 저하와의 구분도 쉽지 않다. 65세 이상에서 치매 유병률은 2023년 기준 약 9.25%, 경도인지장애는 28.4%에 이른다. 치매 환자의 30∼80%에서 우울 증상이 동반된다는 보고도 있다. 반대로 심한 우울증은 주의력과 집행 기능을 떨어뜨려 치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저하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몸이 아픈 줄 알았다…”
우울증은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즐거움의 상실이 핵심이다. 여기에 식욕과 체중 변화, 불면 또는 과수면, 피로감, 집중력 저하, 무가치감, 죽음에 대한 반복적 사고 등이 동반된다. 이전과 비교해 일상 기능이 뚜렷하게 떨어지는지도 중요하다.
노년층은 우울감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두통, 어지러움, 가슴 두근거림, 소화불량, 허리 통증 같은 신체 증상을 먼저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가 뒤늦게 정신건강의학과로 의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변기환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은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오해돼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우울 증상으로 일상 기능이 떨어진다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특히 죽음에 대한 반복적 사고나 자살 생각이 나타난다면 지체 없이 전문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하다. 항우울제 약물 치료와 정신 치료를 병행하면 상당수 환자에서 증상이 호전된다. 최근에는 부작용이 적은 약제가 사용되고 있어 고령자도 비교적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말수가 줄고 활동을 회피하거나 식사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변화가 보이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 말로 넘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같은 공공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노년기 우울증은 방치하면 기능 저하와 자살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노년기의 마음 건강을 지키는 일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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