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백신 확보전 함께 뛴 한국 기업[광화문에서/김현수]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01-25 03:00수정 2021-01-25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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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지난해 12월 말, 우리 정부와 화이자 간 백신 협상이 벌어졌다. ‘빨리 달라’, ‘지금 물량이 없다’는 말만 오가던 협상의 흐름이 이 한마디에 달라졌다고 한다.

“백신 잔량이 남지 않는 주사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한 관계자는 “지지부진하던 협상의 흐름이 열띤 분위기로 바뀌었다. 원래 1시간으로 예정된 회의가 30분 더 이어졌다”고 전했다.

일반 주사기에는 백신을 사람에게 주사할 때마다 몇 방울이 남는다. 한 방울도 아까운 백신이 버려지는 셈이다. 우리 측이 제안한 주사기는 아까운 잔량을 없애는 ‘최소주사잔량(LDS)주사기’였다. 1만 명 몫 백신을 1만2000명이 쓸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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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협상의 히든카드로 등장한 ‘특별 주사기’는 삼성의 아이디어였다. 물밑에서 화이자와 접촉하며 특별 주사기에 대한 관심을 파악했다. 주사기를 개발할 의료기기 중소기업 ‘풍림파마텍’을 찾고, 풍림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도록 지원했다. 모두 연말연시에 뚝딱 이뤄진 일이다. 바이오 업계에선 이 주사기가 다른 다국적 제약사나 이미 물량을 충분히 확보한 국가와의 추후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주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노바백스와 백신 기술이전 협약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SK바이오사이언스의 경북 안동 생산라인을 직접 찾기도 했다. 기술이전은 일반적인 위탁생산과 차원이 다르다. 위탁생산은 그야말로 ‘고객사’가 모든 것을 정한다. 반면 기술이전은 원하는 물량을 원하는 때에 생산할 수 있다. 우리 필요에 따라 SK가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노바백스 기술이전 추진 뒤에도 숨 가쁜 ‘백신 확보전’이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과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대표가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노바백스 본사로 날아가 최고경영자(CEO)와 담판을 지었다. 자가 격리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직접 만나야 설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기업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의 주요 기업 최고위 경영진이 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역량을 총동원해 백신 확보전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지난해 말 우리 정부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지원에 나섰다고 한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기술 역량이 빛을 발한 것이다. 성탄절부터 새해까지 숨 가쁜 일정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진심을 다해 뛰었다. ‘국보급 제조 전문가’로 꼽히는 김종호 삼성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사장)도 숨은 공신으로 꼽힌다. 주사기 설계도만 보고 4일 만에 금형 제작을 끝냈다. 그는 지난해 마스크 대란 때에도 중소업체들을 지원해 품귀 현상을 끝내는 데 기여한 주인공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백신 관련 부처 내 이견을 정리하고, 기업들의 확보전에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그야말로 민관 합동 작전인 것이다. 민관 파트너십은 국가적 위기 때마다 극복의 원동력이 된 우리만의 자산이다. 굳이 기금 출연하라며 ‘이익공유제’ 같은 법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기업들은 묵묵히 뛰고 있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백신#확보전#한국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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