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연대[2030 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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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
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같은 질문에 대해 각기 다른 답변들을 듣고 있으면, 사고가 확장되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은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마주 앉은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호감지수가 상승하는 것은 덤이다. 취미, 장래희망부터 취향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하지만 최근 그 목록에 추가된 질문이 하나 있다. “슬플 때 어떻게 해?”

요즘 유난히 슬픈 사람들이 많다. 장기화된 팬데믹에 가슴을 옥죄는 사건 사고까지. 울고 싶지 않은 사람을 찾는 일이 더 어렵다. 감정을 지배하는 ‘디폴트 값’이 슬픔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시기, 타인의 답안지를 참고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 그런 방법도 있겠구나, 나도 다음에 해 봐야지.’ 답안은 가지각색이다. 슬픈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 술을 먹는 사람, 여행을 가는 사람, 운동을 하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 청소를 하는 사람….

내 경우에는 보통 여행을 가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도 높은 슬픔에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울고 자기를 반복한다. 끼니도 거르고 내일이 없을 것처럼 자고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오면, 배가 고프다. 그 와중에 배는 또 고프다. 먹고 싶은 메뉴를 정성껏 골라 허기를 채우고, 다이어리를 펼친다. 감정의 잔해를 쏟아내다 보면 다시 또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괜찮다.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손바닥만 한 페이지 안에서 분노와 타협, 좌절과 극복을 반복한다. 다만 한 가지 꼭 지키는 것은 그 끝에 ‘그래도’로 시작하는 문장을 하나 더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래도, 아직 괜찮다.’ ‘그래도, 다시 힘내보자.’ 딱 그만큼의 긍정과 딱 그만큼의 용기면 대체로 충분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종종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맞닥뜨린다. 아무리 기를 쓰고 털어내려고 해도 도저히 가시지 않는 불안과 우울. 그럴 때 결국 위로가 되는 것은 여행도 잠도 다이어리도 아닌, 사람. 나의 슬픔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다. 그로 인해 깨닫는 것은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슬픔의 총량에는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나의 총량이 다한 날에는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총량에서 빌려올 수밖에. 역으로 오늘 나의 총량이 여유 있는 날이라면 타인의 슬픔을 기꺼이 들어주려 한다. 슬픔의 연대. 어쩌다 감사히 오늘은 덜 슬픈 마음이, 더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는 메커니즘으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슬펐던 어느 출근길, 나보다 더 슬픈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쓴 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모두가 자신의 마음과 투쟁 중이다. 고민 하나 없는 사람 없고, 불안하지 않은 이 없으며, 우울을 모르는 자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울고 싶지 않은 마음 하나 없다. 산다는 것은 마음을 붙드는 일인지도. 간헐적 기대와 행복에 기대어 불안, 우울과 더불어 사는 과정인지도. 내가 나를,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덜 아픈 마음이 더 아픈 마음을 끊임없이 보듬고 붙드는 여정인지도.’

다행히 오늘은 나의 총량에 여유가 있다. 기꺼이 듣고, 그 어느 날 기꺼이 기대겠다.

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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