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친환경 표준,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광화문에서/염희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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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차장
염희진 산업2부 차장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인 한국콜마는 1년 반 동안 연구한 끝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화장품을 담는 종이튜브를 개발했다. 이 종이튜브는 기존 플라스틱 튜브와 달리 화장품을 다 쓴 후에도 찢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 다른 소재로 대체하지 못한 뚜껑(캡)을 제외하면 이 회사는 종이튜브를 통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80%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콜마는 600여 개 회원사에 이 종이튜브를 제안할 계획이다. 화장품시장의 새로운 친환경 표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화장품은 재활용이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판매되기 때문에 소비자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내용물이 용기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 비율도 낮은 편이었다.

그런 화장품 분야에서 ‘레스(less) 플라스틱’을 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아모레퍼시픽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 리필 스테이션이 대표적인 예다. 이 리필 스테이션은 주유소처럼 용기를 가져가면 화장품과 샴푸 등을 리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단순히 용기를 친환경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서 화장품의 판매와 소비 시스템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다.

이제까지 소비재 기업에 ‘환경’은 판매 전략을 바꿀 만큼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가격과 디자인, 품질이 괜찮으면 그럭저럭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비자들이 먼저 달라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작년에 이어 올겨울에도 패션업체들이 앞다퉈 출시한 ‘뽀글이’ 플리스 가운데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제품이 많다. 가격이 다른 제품에 비해 높아도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입을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친환경은 앞으로 기업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페트병을 만들 때 50% 이상을 폐플라스틱이나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후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에비앙이 100% 재활용된 병으로 신규 상품을 제조하고 2025년까지 상품의 순환구조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부터 친환경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향후 글로벌 기업들이 내세운 새로운 기준에 벗어난다는 이유로 산업에서 퇴출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최근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 경쟁이 시작된 가운데 해양에서 생분해되는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나라로 한국, 미국, 일본 등이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CJ제일제당이 해양 생분해 소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미 일본에서는 정부 주도로 2050년까지 해양 생분해 플라스틱 산업을 위한 로드맵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기업들을 위한 세제 혜택이나 규제 완화 등 관련 산업의 육성 전략이 촘촘히 세워져 있다. 과연 우리에게는 친환경 주도권을 확보해 나갈 이런 큰 그림이 있는지 궁금하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
#기업#친환경 표준#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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