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운명 결정짓는 소통과 불통[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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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주역은 그 출발이 경영이었다. 다소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주역의 연원을 추적하다 보면 이런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주역은 중국 신화시대의 복희씨가 처음으로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늘(*)과 땅(+), 물(,)과 불(-), 산(.)과 연못(/), 우레(0)와 바람(1) 등 대표적인 자연현상 여덟 가지를 기호(상징체계)로 그렸는데 이것이 주역의 기초인 8괘다. 주나라의 문왕은 이 8괘를 아래위로 중첩시켜 64개(8×8=64)의 복합 괘를 만든 후 각각의 괘에 이름을 붙였고, 주공은 괘를 구성하는 단위 요소인 효(爻)에 의미를 부여했다. 전자를 괘사(卦辭), 후자를 효사(爻辭)라 한다.

복희씨와 문왕이 괘를 만들 때 참고했다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주역과 경영의 관계를 추론해낼 수 있다. 두 문건은 모두 강(江), 즉 치수(治水)와 관련이 있다. 하도의 하(河)는 황하강을, 낙서의 낙(洛)은 황하강의 지류인 낙수를 뜻한다. 고대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강물을 끼고 있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강물은 인류가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문명적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다. 수량이 풍부해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었고, 농산물 수확량에 비례해서 거두는 세금은 고대국가의 경제적 원천이었다.

문제는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강물의 범람이었다. 강물이 범람하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토지의 경계가 흐릿해져 소유권 분쟁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세금을 징수하는 기준과 근거, 대상도 뒤죽박죽됐을 것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 입장에선 난감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국가경영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게 바로 주역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경영의 핵심은 소통이다. 64괘 가운데 지천태괘(地天泰卦)와 천지비괘(天地否卦)를 비교해서 보면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우선 지천태괘는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위에 놓이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으로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상식적으로 하늘이 밑에 있고 땅이 위에 있으면 세상이 뒤집힌 것이니 무질서나 대혼란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왜 태평성대를 뜻하는 태(泰)를 괘사로 삼았을까? 바로 소통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임금이 가장 높은 자리인 하늘을 백성들에게 내주고 자신은 가장 낮은 자리인 땅에 거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양을 상징하는 괘가 지천태괘다.

천지비괘는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가 위에, 땅을 뜻하는 곤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이다. 평면적 시각에서 보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안정적인 상태다. 하지만 주역에선 이 괘의 괘사에 비(否)자를 붙이고 있다. 한자 否는 일반적으로 ‘아닐 부’자로 읽지만 주역에서는 ‘막힐 비’로 읽는다. 천지비괘는 임금이 자신의 자리인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양으로 지도자의 권위만 내세우고 아랫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꽉 막힌 상태를 상징한다.

조선 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지천태괘의 괘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임금이 세종이다. 세종은 군주로서 권위를 내려놓고 신하들과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을 향해 쓴소리를 일삼는 신하를 향해서도 “기탄없이 말하라”며 마음을 열었고, 공법이라는 새로운 세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17만여 명에 이르는 백성들의 소리를 직접 들었다. 소통을 중시하는 임금의 리더십 덕분에 세종치세는 태평성세를 이뤘고 후세는 세종을 성군으로 칭송하고 있다.

연산군은 정반대 사례다. 그는 임금의 자리에서 한 치도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황음(荒淫)과 사냥을 절제하고 국정을 제대로 보살피라는 신하들의 쓴소리에는 귀를 닫았고, 군주와 신하들이 소통하는 공간이었던 경연(經筵)에는 빗장을 걸었다. 심지어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라는 정치적 변란을 기화로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신하들을 조정에서 몰아내고 목숨을 빼앗았다. 주역 천지비괘에서 말하는 꽉 막힌 소통 때문에 그는 결국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났고, 역사는 그를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원고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월 15일자에 실린 ‘주역에서 말하는 경영의 핵심은 소통’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리더#운명#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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