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덜컥 발표부터 했다가 ‘미국 벽’ 부딪힌 核잠수함 졸속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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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우리 정부의 핵추진잠수함 개발계획을 설명하고 핵연료인 저농축우라늄 공급을 요청했지만 미국이 난색을 표시했다고 한다. 미국은 핵 비확산 원칙을 앞세워 원칙적인 설명을 한 것이라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한미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핵잠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도입을 언급한 이래 올해 8월 국방부의 국방중기계획(2021∼2025년)에 반영되면서 공식화됐다. 핵연료 수급은 2030년대 초반 실전 도입을 목표로 한 정부 핵잠수함 사업의 기본 전제나 다름없다. 우리의 핵잠 개발 능력이 충분하다고 해도 그 연료 확보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핵잠 개발을 공개하고 나서야 연료 확보 방법을 찾는 것은 배터리도 없이 전기자동차 시대를 열겠다며 의욕만 앞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핵잠 개발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착 신형 잠수함 도입에 대처하고 주변국도 견제할 수 있는 전략무기 도입 사업이다. 그런 사업을 앞뒤 따지지도 않고 공개해 국내적 기대감과 대외적 경계심을 불러놓고는 정작 그 첫 단추부터 끼우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북한과 중국을 우선하며 한미 간 불협화음이 나오는 형편에서 미국은 그저 설득될 줄 알았던 것인지도 의문이다.

김 차장은 7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합의를 이끌어낸 뒤 “차세대 잠수함은 핵연료 엔진을 탑재한 잠수함”이라며 핵잠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사전에 미국의 의중을 떠봤는지 알 수 없으나, 미국과의 협의나 우리 내부 준비과정이 충분했다면 미국의 반응이 이럴 리는 없다. 당장 군사적 목적의 핵연료 사용을 제한하는 한미 원자력협정은 핵잠수함과는 별개라고 판단한 것부터가 순진한 발상이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추진하는 핵잠은 핵미사일을 탑재한 전략핵잠수함과는 다르지만 한 번 물속에 들어가면 몇 달간 작전이 가능한 위력적인 무기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은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던 미국의 전략에 부합한다지만, 핵잠은 당장 핵 비확산 국제규범의 제한부터 뛰어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종합적인 전략 아래 주도면밀하게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접근법을 짜야 한다.


#정부#핵추진잠수함#개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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