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美 온라인전당대회 주목받는 ‘스크린 메시지’[광화문에서/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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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워싱턴특파원
이정은 워싱턴특파원
정말로 이상한 전당대회이긴 했다. 대형 행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도, 박수도, 청중이 뿜어내는 후끈한 열기도 없었다. 화려한 색깔의 풍선이나 플래카드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때로 다큐멘터리, TV 인터뷰 아니면 유튜브 강연을 연상케 하는 프로그램과 생중계 연설이 뒤섞인 2시간짜리 영상물이 전부였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이렇게 짜인 나흘간의 온라인 행사로 막을 내렸다.

이번 전당대회의 핵심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민주당이 온라인이라는 포맷을 어떻게 활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느냐는 것이었다. 50개 주의 학생들이 50개의 분할 화면에서 만들어낸 미국 국가의 하모니, 농부와 간호사 등 다양한 직종의 유권자들이 동시에 참여한 화상 인터뷰, 펄럭이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읊조리는 수십 명의 목소리가 녹아 들어가게 한 편집 영상에서는 온라인의 특징을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였다. 각 주의 특성을 앞세운 ‘롤 콜’(roll call·주별로 확보한 대의원 수를 발표하는 호명 절차)은 가장 호평받은 순서 중 하나. 각 주의 대표들이 선거 결과를 외치는 장면에서 지역 특산물인 칼라마리(오징어 요리) 접시나 화려한 원색의 원주민 전통 복장,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을 보게 될 줄 누가 예상했던가.

비슷한 방식의 영상이 반복되며 후반부의 집중도와 긴장감을 떨어뜨린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생중계 연설의 경우 스튜디오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방송 사고처럼 화면이 정지되는 순간들이 발생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연설은 첫 발언이 사회자의 소개와 엉켜버렸다.

이런 한계를 상쇄시킨 가장 강력한 힘은 메시지였다. 민주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거물 인사들을 총동원해 나흘간 지속적으로 전달한 메시지는 분명하고도 일관됐다. ‘도널드 트럼프를 꺾자’는 것과 이를 위해 ‘투표하라’는 것. 홀로 카메라 앞에서 진행한 차분한 연설이었음에도 이들이 보여준 설득력과 흡입력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힘이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역설할 때 그의 뒤에 쓰여 있던 ‘헌법을 쓰다(writing the constitution)’라는 붉은 글씨는 어찌나 선명해 보이던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내가 당했듯이 이번에도 300만 표를 더 얻고도 질 수 있다”며 압도적인 표 차로 승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을 때는 기자까지도 그가 누르라는 ‘30330’을 눌러버렸다. 유권자 등록 안내로 연결되는 번호다.

이제는 공화당 차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TV 리얼리티 쇼를 진행했던 경험을 앞세워 이번 온라인 전당대회 준비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많은 생중계와 청중들의 열광적 반응을 넣어 민주당보다 더 다이내믹하게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당대회의 승부는 형식이 가르는 게 아니다. 방향성이 분명하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폄하, 낙인찍기와 막말이 없어도 유권자들을 끌어들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낼지는 공화당 전당대회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정은 워싱턴특파원 lightee@donga.com
#미국#온라인 전당대회#스크린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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