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급차, 119 보완 역할… 공익 차원서 감독-지원 강화해야[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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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에 시달리는 사설구급차 업계

‘깡통 구급차’ ‘택시 구급차’.

길을 가다 보면 사이렌 소리에 황급히 길을 내어준 경험은 누구나 있다. 그런데 달려오는 차량이 사설 구급차일 때 표정이 바뀌어본 경험도 적지 않다. 119 구급차와 달리 사설 구급차는 언젠가부터 뿌리 깊은 불신의 대상이 됐다.

실제로 일부 사설 구급차들의 불미스러운 문제가 여러 번 불거졌던 탓에 이런 불신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업계 사정은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단순히 그들 탓으로 몰고 가기엔 외부적 요인이 적지 않다. 관련 전문가들도 “정부가 적극 개입해 업계 환경을 바꿔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설 구급차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란 과연 뭘까.

○ 119 구급차 보완재 성격의 사설 구급차

누구나 알다시피 구급차는 크게 소방서 119 구급대와 지방자치단체 허가를 받은 사설 구급차로 나뉜다. 응급 상황에 처한 환자를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는 119 구급차는 전국적으로 1420대(2018년 기준)를 운영한다. 그런데 이 119 구급차는 각 지역 소방 소속이라 관할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 환자 이송 뒤 다음 출동을 위해 ‘스탠바이’ 하기 위해서다.

사설 구급차는 이를 보완하는 성격을 지녔다. 장거리 이송이 가능하고 비교적 급하지 않은 환자도 옮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설 구급차는 전체 935대 가운데 726대가 제세동 장비 등 특수 의료장비를 구비한 특수 구급차이고 나머지는 일반 구급차다. 최근 택시 기사에게 가로막혔다가 병원에서 숨진 80대 여성이 타고 있던 게 이 사설 일반 구급차다.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설 구급차가 원성의 대상으로 바뀐 건 2013년 벌어진 사건이 기름을 부었다. 개그맨 강모 씨가 사설 구급차를 타고 행사를 하러 가는 사진을 자랑 삼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다. 안 그래도 사설 구급차에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던 시민들의 분노는 활활 불타올랐다. “사설 구급차가 돈 많은 연예인의 택시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게다가 일부 사설 업체가 빈 구급차를 사이렌 켜고 몰거나 난폭운전을 일삼는 사례들도 덩달아 논란이 됐다. 결국 2016년 1월 도로교통법에는 ‘구급차를 긴급한 용도로 운행하지 않을 때는 경광등을 켜거나 사이렌을 작동해선 안 된다’는 조항까지 신설됐다.

장비나 약품 등 기본 요건도 갖추지 않은 이른바 ‘깡통 구급차’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일부 영세업체들이 응급구조사도 두지 않고 링거조차 맞힐 설비도 없이 출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 상황에 대비가 안 된 구급차들이 늘어나면서 이송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데도 손을 쓸 수 없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3년 정부는 사설 구급차 관련 규정을 현실화한다며 업체가 특수 구급차 10대당 갖춰야 하는 응급구조사의 수를 24명에서 16명으로 줄여줬다. 하지만 이 규정조차 지키지 않는 업체는 여전히 적지 않다.

○ 사설 구급차, 119 구급차 인원 5분의 1 수준

전문가들은 사설 구급차가 규정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을 업체 자체의 문제로만 몰고 가선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구급차 관계자도 “수입보다 인건비 지출이 더 큰 사설 구급차 업계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법 개정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률이 요구하는 인력 채용 등의 기준을 충족하기엔 사설 구급차의 수익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구급차의 기준 및 응급환자이송업의 시설 등 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는 “환자이송업체는 보유한 특수 구급차의 80%에 한 대당 운전자 2명과 응급구조사 2명을 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수 구급차 10대를 갖고 있는 업체는 응급구조사와 운전기사를 합쳐 최소 직원 32명은 뽑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규정상 응급환자이송업을 하려면 특수 구급차를 최소 5대는 운행해야 한다. 또 구급차가 나갈 때는 응급구조사 1명을 포함해 2명 이상 인원이 구급차에 타야 한다. 사설 구급차 업체 관계자 A 씨는 “사설 구급차는 주로 병원 간 전원 환자를 많이 이송해 주간에 출동이 많다. 차 한 대당 직원 4명을 고용하면 잉여 인력이 반드시 생기는 구조”라고 말했다.

야간에도 수시로 출동하는 119 구급차와 상황이 다른데 현행법은 사설 구급차도 24시간 교대 대응체제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 씨는 “영세업체가 비용 감당이 어려워 직원을 줄이면 그 순간부터 불법을 저지르는 셈”이라며 “서울의 대형 환자이송업체들도 이런 기준을 맞추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정부는 2013년 사설 구급차 이송 기본요금을 일반 구급차는 3만 원, 특수 구급차는 7만5000원으로 50%가량 올려줬다. 이송요금이 인상된 건 20여 년 만이었다. 업체들은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고 반가워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시민들이 비싸다며 구급차 이용을 기피한 것. 결국 영세업체들은 암암리에 할인된 가격으로 고객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일반 구급차를 외형만 손봐 특수 구급차로 운영하는 ‘띠 갈이’도 이때부터 등장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은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불러왔다.

사설 구급차 업계의 열악한 환경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의 ‘2018 응급의료통계연보’를 살펴보면 119 구급대 1대당 응급구조사 및 의료인 수는 7.12명. 하지만 사설 구급차는 1.25명에 그친다. 사설 구급차 1대가 주간 16시간만 운영된다고 해도,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응급구조사 2명이 필요한데 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결국 응급구조사들도 민간 사설업체보다는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소방서나 병원으로 몰리는 실정”이라고 했다. 업체는 업체대로 인건비가 없고, 응급구조사들도 민간업체 취업을 원치 않다 보니 민간업체는 불법 영업을 감행하는 악순환이 현재도 벌어지고 있다.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급차 탑승 인원 기준도 따져 보면 미흡한 점이 많다. 환자의 중증도와 관계없이 응급구조사 및 의료인 1명이 탑승하면 구급차의 출동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환자가 이송 도중에 심정지라도 발생하면 응급구조사 1명이 가슴 압박을 하고 동승한 보호자가 환자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박시은 동강대 응급구조과 교수는 “응급구조사 2급은 6개월 정도의 단기과정을 거쳐 양성되는 이들로 1급을 보조하는 인력인데 급수에 상관없이 응급구조사 자격증만 있으면 구급차에 탈 수 있게 규정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 “정부가 지원금 주되 적극 개입해야”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개입’을 첫 번째로 꼽았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관계자는 “사설 구급차도 결국은 공공성이 높은 분야다. 수익을 낼 환경은 만들어주지 않고 높은 잣대만 갖다 대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철저한 감독 관리 아래 금전적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로 각 지역 소방본부에 소속된 119 구급차를 기준으로 한 번 출동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4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응급구조 지식을 갖춘 전문 인력인 소방공무원 2명을 포함해 운전기사까지 최소 3명이 동시에 출동하는 인건비의 비중이 작지 않다. 당연히 119 구급차 비용은 정부가 모두 부담한다.

이에 비해 사설 구급차는 사실상 방임 상태에 처해 있다. 각 지자체에서 환자이송업체를 관리하고 있지만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한다. 실태조사도 2년에 한 번꼴로 이뤄진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적극적인 관리 감독이 쉽지 않다. 조사 때만 응급구조사 면허증과 의료기기 등을 빌려와 대충 넘기는 업체들도 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사설 구급차 의료 서비스 질적 하락의 주요한 원인인 비용 문제에 있어서도 속수무책이다. 현재 정부에서 환자이송업체에 지원하는 비용은 전혀 없다. 업계에서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민간업체에도 재정 지원을 해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원을 받는 업체를 점검하면 정부가 자연스레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이점도 생긴다.

지금껏 정부는 환자이송업의 공익적 측면보다는 개인 간 거래인 ‘상업적 측면’에 더 주목해왔다. 구급차가 필요한 환자와 이송업체 간 직접 거래에 정부가 끼어들어 감시를 벌이거나 지원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불편을 겪는 건 국가나 업체가 아니라 시민들, 특히 환자의 몫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민간병원이 정부 감시를 받는 대신 건강보험공단의 지원을 받는 것처럼 사설 구급차도 제도권에 편입시켜 감시와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사설 구급차의 중요도와 공공성을 재평가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전채은 chan2@donga.com·이청아 기자
#깡통 구급차#119 보완 역할#공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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