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어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지구에 군부대를 다시 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을 부활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9·19 남북군사합의마저 백지화하겠다는 협박이다. 그런 북한의 속내를 일부 드러낸 게 김여정이 그제 내놓은 장문의 대남 비난 담화다. 김여정은 지난 2년간 우리 정부가 남북 합의보다 한미동맹을 우선했고 대북제재의 틀을 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비핵화의 ‘비’자는 한마디도 없었다. 더 이상 비핵화에 매달리지 말고 북한 편에 서라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을 설득해 북-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고 제재는 지속됐다.
정부 일각에선 이번 대남 도발은 김여정이 주도하고 있으니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도모하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듯한 북한의 강경노선은 급선회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결심하지 않는 한 이벤트식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결국은 쳇바퀴만 돌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북한 비핵화를 확고한 목표로 재확인하면서 대북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새로 짜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