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먼저 구하나[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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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유럽의 이탈리아와 스웨덴이 ‘연령 차별’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탈리아 의학계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환자부터 치료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사실상 중증 고령 환자에 대한 치료 거부를 정당화하는 내용이어서 ‘이탈리아판 고려장’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반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선 고령자만 진단 검사를 하기로 해 젊은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의사에게는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 전쟁이나 재난이 닥쳐 의료자원이 부족할 땐 어쩔 수 없이 ‘트리아주(triage)’, 즉 환자를 분류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트리아주는 커피 원두를 골라내는 것을 뜻하는 프랑스어. 나폴레옹(1769∼1821)의 군의관이 전쟁터에서 ‘부상자 선별’의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치명적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계급이나 수훈과 무관하게 맨 먼저 처치를 받아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프랑스 혁명 정신인 ‘평등’ 사상을 구현한 트리아주다.

▷세계적으로 합의된 트리아주의 원칙은 없다. ‘급한 환자부터’라는 원칙이 있는가 하면 ‘최대 다수에게 최대 이익’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1846년 영국 해군은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한 수술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쏟는 의료자원이면 다수의 경증 군인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급진적인 사람들은 ‘무작위’를 주장한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고, 누군가에게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결정할 권한을 주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란다.

▷요즘 응급실에선 가장 위험한 환자가 우선이다. 그런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침수 위기에 놓인 미국 뉴올리언스 메모리얼 병원의 구조 우선순위는 정반대였다. 병원은 환자를 3등급으로 분류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1등급’을 맨 먼저 대피시키고, 다음은 부축이 필요한 ‘2등급’, 나머지 위중한 ‘3등급’을 마지막 순위로 두었다. ‘최대 다수에게 최대 이익’이 기준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주정부는 재난 시 환자 분류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인공호흡기 등 부족한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누구를 먼저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까. 유럽의 선진국이 2차 대전 이후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윤리적 고민에 빠질 정도로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다. 한국도 병실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가 나오고 의료진의 피로도도 누적된 상태다. 코로나19에 집중하느라 다른 중증 응급 환자들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 의사들 같은 고민 없이 위기를 넘기려면 환자 증가세를 완전히 꺾어놓아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코로나19#연령 차별#트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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