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턱 낮춘 예비타당성조사, 정치 바람 타기 더 쉬워진 SOC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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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경우 경제성 평가를 5%포인트 줄이고 지역균형발전 평가를 5%포인트 늘리기로 했다. 사실상 예타의 문턱을 낮추는 개편안이다. 또 재정건전성을 중시해온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조사기관에는 비용편익 간의 경제성 분석만 맡기고 종합평가는 기획재정부 산하에 신설하는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 맡겨 정치권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작용하기 쉬운 구조로 바꿨다.

정부는 1월 24조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는 대대적인 선심성 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예타 면제 발표가 국가재정법상의 예외 조항을 활용한 것이었다면 이번 개편은 제도 자체를 바꿔 지방의 SOC 사업 추진의 문을 크게 열어준 것이다. 1월 예타 면제 발표로 4조7000억 원 규모의 남부내륙철도 등 이미 예타에서 한두 차례 떨어진 사업들까지 면제 대상이 됐다. 이번 개편으로는 지역거점도시가 추진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타의 핵심은 경제성 조사다. 타당성 조사가 주로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반면에 예타는 주로 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역구 의원치고 좋아할 이가 없는 제도지만 국가부도 위기를 겪고 나서인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선심성 재정사업에 국민 혈세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경제성 평가 비중을 낮춘 제도 개편은 ‘재정 문지기’ 역할을 하는 예타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

역대 정권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계속 추가해 예타를 너덜하게 만들면서도 예타의 기준 자체를 함부로 바꾸지 못한 것은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장기간이 소요되는 지역 SOC 사업의 경우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뒷감당은 다음 정부가 떠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300억 원 이상의 국가 지원을 받는 SOC 사업을 승인받을 여지가 커졌다. 정부는 “종합평가를 하는 위원회를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선심성 재정사업을 추진하려는 정치권 공세를 막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사회간접자본#예비타당성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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