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일은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는 천안, 진천, 청원, 연기 주민 3000여 명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일제의 조선 식민 지배에 반대하여 항일 독립만세를 불렀다.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은 조인원 이백하 유중무 김구응 유관순 유중권 홍일선 김교선 한동규 이순구 조만형 박봉래 등이 주도했다. 특히 이백하는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구국동지회 명의로 기초하고, 조인원은 오후 1시경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유중무는 자금을 담당해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한 유관순은 귀향해 아버지 유중권과 조인원, 숙부 유중무에게 서울의 상황을 전하고 태극기를 제작 배포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음력 3월 1일 홍일선과 김교선 등은 병천시장에 나가 만세시위의 참여를 권유했다.
오후 1시경 조인원이 시장의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장 군중은 크게 환호했다. 병천 헌병주재소의 일경 5명은 만세 소리에 놀라 시장으로 출동해 해산을 요구했으나 시위대가 불응하자 발포했다. 사상자들의 친지는 시신을 헌병주재소에 옮기고 항의를 했고 김교선, 한동규, 이백하, 이순구 등이 군중 100명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군중이 점차 늘어나서 1500명에 이르렀을 때 헌병들은 권총을 발포했다. 일제의 강제 진압으로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은 19명이며, 유관순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부상, 투옥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만세운동이었다는 점과 서울 탑골공원에서 낭독된 독립선언서를 참고해 지역 실정에 알맞게 독립선언서를 기초해 독립선언서의 지역화를 기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난 100년간 유관순 열사만 독립만세운동의 주역으로 조명을 받는 바람에 다른 독립투사들은 까맣게 잊혀지고 말아 안타깝다. 정부는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 찾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하여금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혀내게 하고, 2009년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일원에 조성된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전문을 새겨 놓은 기념비를 건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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