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낙태율 반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한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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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만 낳아도 초만원이라더니… 저출산대책=낙태죄 들이댄 정부
헌법재판소 낙태죄 공개변론… 합헌 결정 6년 만에 바뀔까
여성의 몸은 인구통제 대상 아니다

김순덕 논설주간
김순덕 논설주간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1980년대 정부 시책에 따라 딸 하나만 낳은 모범국민인 나도 독박 육아를 떠올리면 새삼 분노가 치민다. 중국은 2015년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도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 목표에 따라 정관수술도, 낙태도 마다하지 않은 국민이 얼마나 착한지 절감할 따름이다. 형법엔 낙태죄가 있지만 순전히 인구 감소를 위해 정부는 낙태죄에 사실상 눈감아 왔다. 2010년까지는.

국민적 대책이 없진 않았다. 초음파 태아 성감별이다. 그 결과 1985년부터 여아 100명 당 남아의 성비(性比)가 109, 112로 치솟으면서 2006년 106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간 남자가 많아진 남초(男超)의 나라가 됐다. 군 입대 성수기 경쟁이 유별나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 때는 여학생 짝꿍도 모자라더니 이젠 취직도, 장가도 어려워져 여혐(여성혐오)이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이들이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1960년대 가족계획 표어를 따를까 걱정될 판이다.

2009년 정부가 돌연 낙태죄를 들고나온 것도 저출산 문제 때문이다.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낙태가 34만 명이라는 2005년 통계치를 들이대며 “낙태율을 반으로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듬해인 2010년 3월 이명박 정부는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 결과 낙태는 줄었는가. 출산은 과연 증가했는가.

합계출산율은 2009년 1.15명에서 2010년 1.23명, 2011년 1.24명, 2012년 1.3명으로 진짜 증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2013년부터는 1.19명으로 확 줄기 시작해 작년엔 1.05명, 사상 최저까지 내려갔다. 여성을 죄스럽게 만드는 낙태 금지의 약발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병의원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꺼리면서 30만∼40만 원 하던 수술비가 단박에 10배쯤 올랐을 뿐이다.

반면 2000년 5540명, 2005년 6459명이던 혼인외자는 2010년 9639명으로 급증했다. 2016년엔 7781명, 숫자는 줄었지만 전체 출생아 중 혼인외자 비율로 보면 2000년의 두 배다. 물론 이 아이들이 모두 미혼모의 자녀라고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낙태 원인과 건수를 고려해보면 미혼모 증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성정현 협성대 교수의 지적이다.

당시 전 장관은 10대 미혼모들에게 월 10만 원씩 양육비를 주겠다며 아이 기르면서 공부하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2012년 청소년학부모자립지원 예산은 달랑 29억 원. 2010년 120억 원에서 근 100억 원이 깎였다. 정부만 믿고 낙태하지 않았던 어린 엄마들은 손가락 빨다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여자가 주로 독박 써온 낙태죄를 놓고 헌법재판소가 24일 헌법에 어긋나는지 따져보는 공개변론을 연다. 4 대 4로 합헌 결정이 난 지 6년 만이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대해 작년 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통해 현황과 사유를 파악해 논의하겠다”고 했다. 국민청원을 한 23만 명이 희망을 가질 법한 답변이지만 지난달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낙태죄 폐지 권고를 ‘사회적 합의’ 필요성을 들어 수용하지 않았다. 헌재의 심판결과, 그리고 실태조사와 실체를 알기 힘든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국민 절반의 몸이 언제까지 인구통제의 마루타가 될지 모른다.

낙태를 금지시켜 인구를 늘린다는 정책은 낙태를 통해 인구를 감소시키는 것만큼이나 전체주의적 발상이었다. 영장류에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암컷은 새끼를 키우기 어려우면 자연유산을 하거나 낳은 자리에서 잡아먹는다. 다른 놈이 잡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낙태가 합법인 국가일수록 낙태율 감소가 뚜렷하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 협력기구인 미국 구트마허연구소의 최근 연구 결과다. 비혼모도 출산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할 만큼 지원하는 것으로 선진국에선 저출산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주무부처 장관이 모범을 보이지 못할 일을 정부가 국민에게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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