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 6명 중 5명 제주 참석, 1명은 영상 참여
반기문 “다자주의 신뢰 재건해야”…조현 “유엔을 다시 보이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에서 열린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내 ‘UN 사무총장 후보자 대담-다자주의 재구상’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귀포=뉴시스
“유엔 사무총장을 흔히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희생양(scapegoat)’이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5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유엔 사무총장 후보자 대담’ 개회사에서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자들을 향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유엔은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해 있고 권위는 의심받고 있으며, 끊임없는 개혁 요구로 신뢰성이 위협받고 있다”며 “내년 1월 1일 사무총장직을 맡는 사람은 역사적 규모의 도전에 직면한 기관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담에는 마리아 에스피노사 전 에콰도르 외교장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레베카 그린스판 전 코스타리카 부통령, 캐럴린 로드리게스버켓 주유엔 가이아나 대사, 마키 살 전 세네갈 대통령이 참석했다. 또 다른 후보인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은 일정상 참석하지 못해 영상으로 참여했다. 현재까지 후보로 등록한 6명이 사실상 모두 참여한 셈이다.
반 전 총장은 차기 사무총장직의 어려움을 강조하면서도 “차기 사무총장은 다자주의에 대한 산산조각 난 신뢰를 재건하고, 유엔이 여전히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드문 특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축사에서 “오늘날 유엔은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됐다”며 “차기 사무총장의 임무는 유엔을 보이게 만들고 세계가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25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에서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내 ‘UN 사무총장 후보자 대담-다자주의 재구상’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단상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샤란짓 레일 영국 배스 스파대학 총장, 마리아 에스피노사 전 에콰도르 외교장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레레베카 그린스판 전 코스타리카 부통령, 캐럴린 로드리게스버켓 주유엔 가이아나 대사, 마키 살 전 세네갈 대통령. 또 다른 후보인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은 일정상 참석하지 못해 영상으로 참여했다. 서귀포=뉴시스후보자들은 유엔 위기의 해법을 각기 다른 키워드로 제시했다. 에스피노사 전 장관은 “신뢰, 성과, 책임성이 필요하다”며 “사무총장은 공정한 중재자로 인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무총장은 오직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만 편향돼야 한다”며 “유엔은 역사상 가장 큰 실행 격차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화·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분쟁이 다른 분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민간인이 고통받는 곳이라면 어디든 유엔이 조기에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주요 7개국(G7),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 협의체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유엔 역할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그들은 부분적 시각을 대변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은 여전히 유일한 보편적 글로벌 플랫폼”이라며 “이것이 바로 유엔이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린스판 전 부통령은 “유엔은 유일무이하지만 단독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며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 지역기구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민간 부문에 단순히 자원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가진 역량과 지식을 파트너십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엔의 30세 미만 직원 비율은 4%에 불과하다”며 “청년들을 위해 유엔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했다.
25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에서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유엔 사무총장 후보자 대담이 열리고 있다. 서귀포=뉴스1로드리게스버켓 대사는 유엔의 구조 개혁과 조정 과정에서 ‘상주 조정관(resident coordinator)’ 제도의 역할이 보호·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개혁과 조정은 지속적인 과정이 돼야 한다”며 “회원국들이 증거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갖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인공지능(AI) 거버넌스 논의에 청년 참여가 필요하다며 “청년들은 방관자가 아니라 기술이 세상에 어떻게 유익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주체”라고 했다.
살 전 대통령은 글로벌 사우스의 시각에서 유엔 개혁을 요구했다. 그는 “1945년 51개국이 가입했던 유엔은 이제 193개 회원국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오늘날 세계와 유엔 운영 방식 사이의 격차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안전보장이사회를 개방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AI는 소수 국가의 특혜가 돼서는 안 되고, 공정한 자본 배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첼레트 전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에서 “문제는 다자주의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다자주의인가”라며 “청년 세대는 의사결정의 공동 설계자로서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들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대결보다 협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위에 유엔이 세워졌다”며 “합의가 가능해지는 공간을 만들고, 당사자들이 대화를 거부할 때도 채널을 유지할 수 있는 사무총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25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호텔&리조트 제주에서 열린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유엔 사무총장 후보자 대담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서귀포=뉴스1조 장관은 이번 제주포럼을 계기로 방한한 후보자 5명과도 각각 면담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국제사회가 지정학적 갈등과 기후변화, 신기술 발전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한 만큼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는 유엔 구축과 차기 사무총장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보자들은 각자의 비전과 우선순위를 설명하면서 유엔과 다자주의의 개혁·발전을 위해 한국과 같은 중견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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